[옛사진 옛사연] 병아리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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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 옛사연] 병아리 장수
<1> 학교 앞 병아리 장수
2023년 11월 30일(목) 16:25
1970년대 초등학생들에게 병아리를 판매하던 학교앞 문구점 풍경(1979년). <광주일보DB>
어린 시절 국민(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어김없이 교문 한쪽에 병아리 장수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따뜻한 봄날이 되면 병아리 장수가 며칠씩 학교 앞을 찾아와 코흘리개 아이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곤(?) 했다. 아저씨가 가져온 종이상자 안에는 샛노란 병아리 수십 마리가 들어있었고 ‘빼약삐약’ 울음소리를 내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주머니 속 동전을 탈탈 털어 200원을 주고 병아리 두 마리를 받아왔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귀여운 병아리를 데리고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엄마에게 혼나긴 했지만 꾸지람은 잠깐이었다.

병아리들의 새로운 집은 라면 상자였다. 사방에 숨구멍을 뚫어주고 바닥에는 신문지를 찢어 여러겹 깔아줬다. 아저씨가 나눠준 사료와 엄마가 내어준 조를 먹고 병아리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병아리들에게 상자 집은 의미가 없었다. 중닭이 된 녀석들은 상자를 탈출해 온 마당을 운동장처럼 헤집고 다녔으며 ‘귀여움’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그렇게 마당을 활보하고 다니던 어느 날 병아리 한 마리가 아랫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요즘으로 치자면 아파트 2개 층 높이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작별을 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시골 외가에 보내지는 처분이 떨어졌다. 나머지 녀석이라도 살려야 했기에 부모님의 처분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지난 후 잔뜩 부푼 마음으로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애타게 찾던 병아리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죽었단다. 어떻게 죽었는지 꼬치꼬치 묻는 손녀에게 할머니가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천방지축 병아리 녀석이 겁도 없이 돼지우리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서 밟혀 죽는 것도 모자라 돼지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반려동물 이야기는 잔혹한 새드엔딩으로 끝이 났고 다시는 병아리를 키우겠다는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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