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농사와 호남 민심 -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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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농사와 호남 민심 -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2023년 07월 26일(수) 00:00
내년 총선(4월 10일)이 300일도 남지 않았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네거티브만이 횡행했던 지난 대선과 닮은꼴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부터 지속된 여야 간의 정쟁은 이제 증오와 저주의 정치로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가 단 한 번의 회동도 갖지 않은 것은 물론 여야 대표 간의 만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화와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서로가 정치적 타도의 대상이다. 최소한 민심의 눈치라도 볼 법도 한데 이 정도면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민생의 어려움을 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그야말로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국정 리스크와 민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충돌하면서 내년 총선의 불확실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혁신 바람의 동력 되나

이를 반영하듯, 정치권에 대한 민심의 피로감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는 부동층 비율이 3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거대 여야 정당의 지지율에 육박하는 수치도 나온다. 민심의 정치 불신은 사실상 고착화된 분위기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물갈이론’은 이번 총선에선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심의 저변에서는 이제 ‘물갈이’를 넘어 전면적인 ‘판갈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판갈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적대적 공생 관계에 기댄 견고한 거대 양당 구도를 혁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3 지대 신당 창당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지만 민심에 불을 붙이기에는 인물, 정체성, 지지 기반 등에서 폭발력이 약하다는 평가다. 지역을 기반으로 고착화된 양당 체제와 진영, 세대, 성별 등으로 다분화된 유권자 구도도 판갈이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커짐에 따라 투표율 저조로 인한 민심의 동력이 저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혁신 공천’을 토대로 하는 대폭적인 물갈이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여당은 정권 안정론을,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앞세우겠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심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민심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선점하는 측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생존을 위한 거대 양당의 혁신 공천 경쟁을 이끌 가능성이 높아 내년 총선의 화두를 ‘혁신과 변화’로 자리 잡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호남 민심의 흐름이 주목되고 있다. 정치적 역동성과 진보적 성향이 강한 호남 민심은 수도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 바람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심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호남 정치권은 혁신과 물갈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민주당 일각에서는 호남에서 시작되는 혁신 공천론을 내놓기도 한다. 핵심 지지 기반에서의 대폭적인 물갈이로 혁신 공천 드라이브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물갈이론은 오히려 호남 민심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민심에 스며들고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치 공학적 혁신 드라이브는 분열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지난 20대 총선과 21대 총선에서의 호남에서의 ‘묻지마 물갈이’는 호남 정치의 실종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치적 역동성은 보였지만 그로 인한 한계도 여실히 체험한 것이다. 호남 민심의 저변에 될성부른 중진을 키우고 신진을 발굴해야 하다는 여론이 상당한 이유다.



객토와 물갈이 불가피

농사에 있어 객토와 물갈이는 풍요로운 수확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논이나 밭을 오래 사용하면 흙이 산성화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렵다. 다른 곳의 좋은 흙을 가져와 섞으면 중성화가 되서 다시 농사를 지을 여건이 된다. 다른 흙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객토(客土)라고 한다. 물갈이도 같은 논리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어서 제때 갈아줘야 작물이 튼튼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때를 맞춰 물을 빼고 채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과하면 농사가 망조가 든다.

정치는 결국 사람 농사다. 정쟁의 가뭄과 장마가 이어진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총선은 어찌 보면 정치권에 대한 객토와 물갈이의 시기일수도 있다. 쭉정이는 뽑아내고 적절한 객토와 물꼬 내기로 작물을 키우는 부지런한 농부의 지혜가 요구되는 셈이다. 군부 독재의 폭압과 차별을 이겨내고 민주화의 시대를 열었던 호남 민심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을 기치로 정쟁의 정치판에 변화를 이끌고 호남 정치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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