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대의 한마음…서로 양보하며 갈등 줄여나갔다
5·18 43주년 흔들리는 대동정신 <3> 타지역 분쟁 해결 사례 보니
여순사건유족회 합동추모식 개최지 갈등 빚다 매년 순회 개최 합의
제주 4·3유족회와 경우회, 10년 ‘화해 캠페인’ 노력 끝에 교류 넓혀
중요한 건 소통과 협치…국민 설득해 공감대 만들고 숙성 과정 필요
여순사건유족회 합동추모식 개최지 갈등 빚다 매년 순회 개최 합의
제주 4·3유족회와 경우회, 10년 ‘화해 캠페인’ 노력 끝에 교류 넓혀
중요한 건 소통과 협치…국민 설득해 공감대 만들고 숙성 과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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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주 5·18민주화운동 공법단체와 시민사회단체 간 반목이 심해지면서 갈등을 해소할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여수·순천 10·19사건, 제주 4·3사건 등 국가폭력에 피해를 입은 다른 지역에서도 관련 단체들의 갈등은 늘 있었으나, 이들은 ‘진상규명’이란 명제 아래 서로 양보하며 갈등을 줄여나갔다.
지난 2021년 6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전남 6개 시·군 여순사건 유족회는 합동추모식 개최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기존에는 전남도가 주최하는 시·군 순회 합동 위령제와 여수시에서 열리는 합동 추념식 등 각 지역별로 별도의 추념식을 열었는데, 특별법 제정 이후 정부 차원에서 합동 추념식을 열게 되면서다.
당시 각 유족회는 저마다 자신이 여순사건 최대 피해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수유족회는 “최초 발발지이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수에서 매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구례유족회는 “가장 오랜 시간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구례였으므로 구례에서 개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시·군 유족회도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여수나 구례에서 합동추념식을 열면 안된다”며 잇따라 반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들 단체는 갈등을 반복하기보다 서로 양보하며 ‘소통과 협치’를 선택했다. 매년 추념식에 앞서 전국 유족회장들과 회의를 열고, 각 지역을 순회하며 추념식을 열기로 정한 것이다.
이같은 방침은 지난해 각 지역 유족회를 해산하고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을 발족하면서 정례화됐다.
그 결과 합동추념식은 지난 2021년에는 여수에서, 지난해에는 광양에서 열렸다. 총연합회는 지난 4월 7일 전국 유족 대표들을 소집해 올해 추념식 개최지를 고흥군으로 결정했다. 고흥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추념식이 열리지 않았다는 주장에 타 지역 유족들도 지지 목소리를 보낸 것이다.
이규종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회장은 “유족들이 벌써 80~90대를 넘어선 시점에서 지금은 내부 갈등을 키우기보다 ‘진상규명’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였다”며 “자기 시·군의 피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족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제주 4·3희생자유족회는 60여년 동안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 온 제주도재향경우회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다.
정부 공인 4·3진상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유족회와 경우회 회원들 모두 피해자라는 사실이 공식화되면서다. 4·3이 ‘제주만의 사건’이 아닌 ‘미·소 냉전 정세에 휘말린 세계적인 사건’으로 확인된 점도 화해 분위기에 힘을 실어줬다. 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하면서 화해에 대한 공감대도 더욱 커졌다.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이후로도 10년에 걸친 노력을 쏟은 뒤에야 화해 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재단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도 내에서 크고 작은 ‘화해 캠페인’을 벌였다. 대학과 방송 등 곳곳에서 ‘제주 4·3 화해와 상생’을 주제로 토론회가 잇따랐으며 유족회와 경우회 임원들이 서로의 행사에 참석하면서 화해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유족회와 경우회는 화해 선언 이후로도 매년 군·경 충혼묘지와 4·3평화공원을 합동 참배하는 등 교류 폭을 넓혀갔다.
물론 이후로도 크고 작은 잡음은 있었다. 지난 2017년 김영중 제주경우회장이 “4·3 부적격 희생자의 위패를 4·3평화공원에서 내려야 한다”는 등 왜곡발언을 하고, 지난달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추념식에서는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가 “4·3은 공산폭동”이라며 소란을 피우는 등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미 4·3진상조사보고서로 사건 전말이 공식화된 만큼 더 이상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다.
양조훈 이사장은 “수십년 동안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써 왔던 단체들이 화해하려면, 국민들을 설득해서 공감대를 만들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수다”며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다방면에서 세를 떨치는 요즘에 5·18을 비롯한 전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더 이상 분열과 갈등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과거 여수·순천 10·19사건, 제주 4·3사건 등 국가폭력에 피해를 입은 다른 지역에서도 관련 단체들의 갈등은 늘 있었으나, 이들은 ‘진상규명’이란 명제 아래 서로 양보하며 갈등을 줄여나갔다.
당시 각 유족회는 저마다 자신이 여순사건 최대 피해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수유족회는 “최초 발발지이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수에서 매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구례유족회는 “가장 오랜 시간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구례였으므로 구례에서 개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시·군 유족회도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여수나 구례에서 합동추념식을 열면 안된다”며 잇따라 반발 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방침은 지난해 각 지역 유족회를 해산하고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을 발족하면서 정례화됐다.
그 결과 합동추념식은 지난 2021년에는 여수에서, 지난해에는 광양에서 열렸다. 총연합회는 지난 4월 7일 전국 유족 대표들을 소집해 올해 추념식 개최지를 고흥군으로 결정했다. 고흥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추념식이 열리지 않았다는 주장에 타 지역 유족들도 지지 목소리를 보낸 것이다.
이규종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회장은 “유족들이 벌써 80~90대를 넘어선 시점에서 지금은 내부 갈등을 키우기보다 ‘진상규명’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였다”며 “자기 시·군의 피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족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제주 4·3희생자유족회는 60여년 동안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 온 제주도재향경우회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다.
정부 공인 4·3진상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유족회와 경우회 회원들 모두 피해자라는 사실이 공식화되면서다. 4·3이 ‘제주만의 사건’이 아닌 ‘미·소 냉전 정세에 휘말린 세계적인 사건’으로 확인된 점도 화해 분위기에 힘을 실어줬다. 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하면서 화해에 대한 공감대도 더욱 커졌다.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이후로도 10년에 걸친 노력을 쏟은 뒤에야 화해 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재단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도 내에서 크고 작은 ‘화해 캠페인’을 벌였다. 대학과 방송 등 곳곳에서 ‘제주 4·3 화해와 상생’을 주제로 토론회가 잇따랐으며 유족회와 경우회 임원들이 서로의 행사에 참석하면서 화해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유족회와 경우회는 화해 선언 이후로도 매년 군·경 충혼묘지와 4·3평화공원을 합동 참배하는 등 교류 폭을 넓혀갔다.
물론 이후로도 크고 작은 잡음은 있었다. 지난 2017년 김영중 제주경우회장이 “4·3 부적격 희생자의 위패를 4·3평화공원에서 내려야 한다”는 등 왜곡발언을 하고, 지난달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추념식에서는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가 “4·3은 공산폭동”이라며 소란을 피우는 등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미 4·3진상조사보고서로 사건 전말이 공식화된 만큼 더 이상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다.
양조훈 이사장은 “수십년 동안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써 왔던 단체들이 화해하려면, 국민들을 설득해서 공감대를 만들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수다”며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다방면에서 세를 떨치는 요즘에 5·18을 비롯한 전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더 이상 분열과 갈등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