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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버팀목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이성자 동화작가
2022년 06월 22일(수) 02:00
내가 그 청년을 처음 만난 것은 삼 년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알맞은 키에 단정한 외모, 특히 서글서글한 눈매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청년이었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잘 알고 지내는 K할머니의 손자라는 것을 알았다. 평소 서울에서 공부한다는 손자를 몇 번 자랑하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집에 머물며 신춘문예 공모를 준비한다고 했다. 교육 현장에서 예비 작가들을 지도하고 있던 터라,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대화를 터 놓았다. 그 뒤로도 가끔 청년을 만났지만 하는 일이 잘 되는지, 인사 정도 하고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날 K할머니가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신춘문예가 도대체 뭐기에 저리도 내 손자를 컴퓨터 앞에 잡아 두는 거냐고 물었다. 하도 답답해서 손자에게 밥값이라도 하라며 다그쳤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것처럼 아예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 당선하면 밥은 먹여주는지, 너무도 답답해 묻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또 찾아와서는 돈 버는 일, 결혼하는 일 다 그만두고라도 건강 좀 챙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 쓰는 일이 생사람 잡는 게 아니냐며,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선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해 겨울, 청년이 등단 소식을 안고 내게 들렀다. 보나마나 K할머니가 일부러 나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 같았다. 거실에 들어와 소파에 앉자마자 기쁜 얼굴은커녕 한숨을 푹 내쉬며 “거대한 벽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등단을 했는데 에너지가 다 빠져버린 허깨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선만 하면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을 받고 책도 발간하고, 앞길이 확 트일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문단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뒤늦게 깨닫고 불안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솔직히 등단은 작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인데….

대부분 예비 작가들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공들여 등단만 하고 나면 다음 일들은 한꺼번에 다 풀릴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 더러는 당당함이 지나쳐 으스대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길이란 수학처럼 계산되는 게 아니다. 출발선에서부터 끊임없이 노력하며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인내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먹고 사는 일부터 해결하고 결혼도 하고 그런 과정 안에서 내가 원하는 꿈이 이루어졌을 때 더욱 빛날 수 있다. 오랜 세월 교육 현장에서 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나의 절실한 바람이다.

그런데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누구라도 어떤 시점에서 거대한 벽을 만날 수도 있다. 그 벽을 어떻게 뛰어넘느냐가 제일 큰 숙제다. 미국 랜디 포시 교수의 말처럼 벽은 충분히 자격이 있지 않은 사람을 걸러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느냐를 확인하기 위해 있는 것일 뿐이다. 자신이 스스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값지게 번 돈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거대한 벽은 언제라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길은 유난히 멀고 먼 길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며칠 전 K할머니가 밝은 얼굴로 우리 집에 들렀다. 점심을 같이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손자가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곧 책을 출간하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당신의 손자는 앞으로 훌륭한 작가가 될 테니 걱정 말라고 덕담을 건네 주었다. 그러자 광주문화재단이 어떤 곳이냐며 관심을 보였다. 한마디로 예술인을 존중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광주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며, 더 나아가 예술 지원 사업은 물론 복지 사업 등 고객 만족 경영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활용 방법까지도 아는 대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 지자체와 협의하여 작가들의 실절적인 진로 방향을 도와주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줄 것을 당부한다. 젊은 작가들이 밖으로 나가야 세상은 원만하게 돌아가고, 세상을 경험해야만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방안에 갇혀 쓰는 행위가 아니라 청춘을 충분히 즐기고 느끼며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할 때,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니까. 더욱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작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