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은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원종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광주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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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은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원종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광주지역본부장
2022년 04월 11일(월) 22:30
한 국가가 선진국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민주화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분류될 정도로 부유한 국가로 분류된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은 세계 6위에 이르는 정도가 되었고 K-팝, K-드라마 등 K-컬처는 세계인이 선호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야말로 정치, 경제, 군사력 및 문화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국을 선진화된 사회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각종 수치와 지표는 분명 선진국임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열거한 기준 이외에 더 주목해야 할 기준이 있다. 그것은 그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우하는가’이다. 모든 사회에는 약자가 존재한다. 다만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의 주체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선진적 사회인지 후진적 사회인지가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다. 하지만 장애인이 곧 사회적 약자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장애’ 자체가 아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법률적 권리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진짜 이유이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모든 국민’에 당연히 장애인도 포함된다. 또한 장애인에게 헌법에서 규정한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률 규정을 두고 있다. 그에 따라 월 평균 상시 근로자를 50인 이상 고용하는 사업주는 3.1%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장애인 고용의 의무가 있는 기업들은 법률의 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담금을 부담할지언정 의무 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광주·전남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광주 지역에서 300인 이상 상시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은 68개에 이르는데 장애인 고용률은 2.93%로 법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군에서 그 비율이 더 낮다는 사실이다.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에서 1000인 미만에 해당하는 14개 기업의 경우 장애인 고용률이 2.38%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장애인 고용률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ESG(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 구조를 뜻하는 말)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이상 시혜가 아니라 이미지와 경쟁력을 제고하는 필수 사항이 되었다. ESG 경영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은 수출 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기업의 선한 영향력은 곧 그 기업의 경쟁력이며 소비자가 선호하는 첫 번째 요소인 것이다. 그런데 법에서 규정한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말 것이다.

오는 4월 20일은 42회 장애인의 날이다. 매년 그러했듯이 올해도 장애인의 날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장애인 권리 증진을 약속할 것이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장애인 정책을 언급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공허한 약속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이미 현행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고용 의무가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헌법적 권리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나아갈 것이다. 장애인의 날에 즈음하여 광주·전남 지역 대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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