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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
2022년 01월 19일(수) 06:00
오래 전 해외여행 중 자주 목격했던 일이다. 유명 관광지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 중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요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거나 일행과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중요한 일인가 해서 보면 별일도 아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접스러운 잡담이 대부분이다.

조곤조곤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들을 텐데 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말의 내용이 부실하니 목소리라도 커야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문명사회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광장에 나가면 집회가 열리는 곳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북소리, 노랫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나의 억울한 사정을 당신은 들어야 한다”는 강요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이를 거부하면 불통이라고 강변한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시끄러운 사회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봐도 목청 큰 몇 사람이 담론을 지배하는 구조다. 사회가 시끄럽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감이 없다는 뜻이다. 도란도란 얘기해도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이고, 품격 있는 사회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목소리를 낮추고 좀 조용히 살자.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이란 책을 쓴 미국의 여류작가 도티 빌링턴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늙었다는 증거이다”라고 말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에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이기보다 상대방 의견에 토를 달지 못해 좀이 쑤시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징조라는 것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연발하며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 해서는 환영받는 노인이 될 수 없다. 그게 어디 나이 든 사람들뿐일까.

자기 말 많이 하는 사람보다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애쓰는 사람, 한마디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인기가 높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비판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경청’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웃과 공감하는 삶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만의 과시욕이 점차 심화하고 있는 듯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명품으로 치장하고, 더 큰 차, 더 넓은 아파트로 등으로 물적 과시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자아가 공허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남보다 앞서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스트레스의 최대 요인이다.

사회적 성공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신분 상승 욕구 때문에 타인에게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은 자신마저 속이고 상습적으로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리플리’(Ripley)병이라 한다. 이는 사회적 성취욕은 강하나 성공 가능성이 낮을 때 점점 더 거짓말과 신분 위장을 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교수 채용 과정에 위조된 학력 증명서를 사용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신정아 사건 후 화제가 되었다.

‘리플리’는 원래 소설에서 시작한 이름이지만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주인공의 이름이다. 영화 속에서 리플리는 “초라한 현실보다 멋지게 꾸민 거짓이 낫다”라고 위로하지만, 그도 결국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작금의 각종 학력 스캔들을 볼 때, 리플리 증후군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실력이 아니라 간판이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학력 검증이 이어지면서 유명인 중에서도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있다. 요즘은 조사하면 다 나오는 세상 아닌가. 극심한 경쟁 사회라지만 한심한 모습이다.



/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