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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행정 편의에 30년 된 가로수 118그루 잘려나갔다
광주 서구청 “도로 확장에 이식 불가” 조합 의견 수용
환경단체 “가로수 가치 무시 안이한 행태” 거센 비난
2021년 11월 29일(월) 21:00
29일 오전 광주시 서구 화정동 월드컵 4강로 일대 가로수가 잘려나가 밑둥만 남아 있다. 이 일대 가로수 118그루는 지난 28일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으로 인해 잘려나갔다.
30년 넘게 동네를 지켜온 광주시 서구 화정동 일대의 가로수 100여 그루가 아파트 공사로 인해 하루 사이 몽땅 잘려 나갔다.

광주시와 서구청은 과거 가로수를 고사시킨 범인을 잡겠다며 두 손 두 발 다 걷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최근 아파트 건립을 이유로 가로수 100여 그루를 자르겠다는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관할 행정기관인 서구청은 나무를 잘라낸 것은 행정상 아무런 하자가 없고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아는 최근 가로수로서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라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는 서구청이 업무처리 절차를 무시하고 행정 편의를 위해 도심 경관을 오랜 기간 만들어온 가로수를 잘라낸 안이한 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29일 광주 서구청에 따르면 화정동 일대에 18개동 1976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30만㎡)를 조성 중인 염주주공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은 지난 28일 정비사업 부지 내 인도에 설치된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어 등 118그루를 잘라냈다.

조합은 인도를 도로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인도에 심어진 가로수를 옮겨 심어야 하나 두 수종 모두 뿌리가 깊은데다 직경이 40㎝를 넘는 큰 나무들로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비교적 크기가 작은 이팝나무 141그루를 새로 심는다는 계획안을 제출했고, 서구청은 이를 받아드렸다.

지난 28일 이 일대 가로수가 잘려나가자 광주환경운동연합은 성명서를 내고 ‘서구청이 가로수 바꿔심기 업무처리 절차를 무시하고, 가로수의 가치를 무시한 안이한 행정을 했다’고 비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1987년 심어져 30년 넘게 성장하며 주민들에게 그늘을 주고, 마을의 풍경을 만들어 놓은 나무들이 베어져 밑둥만 남겨졌다”고 애석해했다.

이 단체는 “문제의 가로수들은 광주시 ‘도시림·생활림·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에 따라 ‘도로의 구조 또는 교통에 장애를 주는 가로수’로 판단, 단순 제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바꿔심기’의 대상으로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구청은 이번 가로수 제거 행위는 주택 재건축 사업이라는 도시정비에 따른 작업으로, 심의위원회 심의 절차 없이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업조합이 기존 가로수들을 제거한 것은 정비 계획상 차도를 확장하면서 인도 폭이 좁아질 것에 대비, 보도 내의 가로수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는 계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비 계획 상 인도의 폭이 좁아지다 보니, 직경이 넓은 가로수들 대신 직경이 좁은 가로수를 심을 수 밖에 없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사업조합이 서구청에 제출한 협의서에도 ‘신설 가로수 보호틀 규격이 협소해 대형 규격의 기존 수목이 활착할 수 있는 생육환경으로 부적합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뿌리가 깊고 크기가 큰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아를 옮겨 심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 절감 차원에서 멀쩡한 나무를 잘라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경희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기존의 가로수를 존치하거나 이식하는 방법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 또 재개축사업이 보행공간을 충분히 확보했다면 이식도 가능하였을텐데, 신규 인도가 폭이 좁아 이식이 어렵다는 재개발 조합측의 의견에서 보듯이 새로운 인도에 기존 나무들의 식재가 불가능한 문제도 있다”며 “새로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보다 도시의 경관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오래된 가로수를 유지·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