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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넓어진 아트컬렉션] 올 가을 우리집에 그림 한점 걸어 볼까
문턱 낮춘 미술시장, 대중과 소통
호텔아트페어, 공동구매 플랫폼 등 다양
MZ세대 새로운 재테크 ‘아트테크’ 인기
전시장 나들이로 심미안 높여 작품 구매
2021년 10월 26일(화) 00:30
부산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가나부산의 전시장.
얼마전 새 아파트로 이사한 주부 권혜신(45)씨는 오랫동안 모아온 목돈으로 통큰 지출을 했다. 값비싼 가구 대신 평소 눈여겨 봐둔 서양화가의 작품을 구입해 거실에 걸어둔 것이다. 주변에선 “무슨 그림이냐”며 그녀의 ‘아트 인테리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권씨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그림 덕분에 칙칙했던 집안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이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풍경이 된듯 했다.

처음엔 고가의 그림에 못마땅해 하던 남편도 막상 달라진 거실을 보고 흐믓해 했다. 중학생인 아들도 “집이 아니라 마치 갤러리 같다”며 신기해 했다. 권씨는 “거실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면서 “오는 28일 광주에서 열리는 아트페어(28~31일, 김대중컨벤션센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근래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그림을 손에 넣는 아트 컬렉션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권씨 처럼 집안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연출하기 위해 구입하는 ‘우아한’ 컬렉터에서 부터 주식이나 부동산 처럼 재산 증식의 일환으로 구매하는 전문적인 아트재테크까지 다양하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의 등장은 미술시장을 달구고 있다. 일부 중산층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미술품 투자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파라다이스 프루스트’ <사진제공=인천파라다이스시티호텔>
#미술시장의 이유있는 변신

40~50대 중장년층들이 화랑이나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구입한다면 이들 20~30대 직장인들은 아트페어, 옥션은 물론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등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 등 보다 적극적이다.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1000~1만원 단위 소액으로 ‘조각투자’ 할 수 있도록 한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게 계기가 됐다.

실제로 서울옥션블루가 운영하는 아트테크 플랫폼 ‘소투’는 여러 사람이 투자할 수 있도록 그림을 수백, 수천개 조각으로 쪼개 놓는다. 가령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그림을 ‘쪼갠 후’ 투자자들이 하나 둘씩 구입하면 향후 경매 등을 통해 해당 그림이 판매될 경우 그 수익을 조각대로 나누는 방식이다.

지난 5월 개최된 ‘아트부산 2021’(5월13일~16일)은 프리미엄 아트페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행사였다. VIP 프리뷰에는 코로나19가 무색할 정도로 1만5000명이 다녀가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또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3일간의 행사기간에는 매일 평균 2만 여명이 찾는 등 총 8만 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판매액도 350억 원으로 국내 미술시장 규모로는 최대다.

아트 부산의 변원경 대표이사는 “코로나19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올라퍼 엘리아슨의 15m 대형 설치작품과 필립 파레노의 ‘마이 룸 이스 어나더 피쉬볼’(My room is Another Fish Bowl) 작품을 설치해 관람객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관객참여형 특별전 10개를 유치해 초보 컬렉터들도 주눅들지 않고 아트페어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17일부터 4일간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 갤러리관과 호텔 파크하얏트부산에서 동시에 개막한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AHAF)’ 역시 미술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큰 성황을 이뤘다.

이처럼 아트 재테크가 ‘새로운 투자’로 떠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의 봉급으로 부동산은 꿈도 못 꾸고, 코인이나 주식은 위험하고, 예적금은 이자율이 낮으니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그림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적은 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트테크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에서 1만 원 단위로 공동구매에 참여한 투자자 중 20, 30대가 절반(52%)을 넘었다.

지난 9월 롯데호텔 울산에서 개최된 ‘제16회 더 코르소 아트페어 울산’ <사진제공=더 코르소갤러리>
#미술시장의 큰손 떠오른 MZ세대

젊은 세대들이 미술시장의 새로운 컬렉터로 등장하면서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아트광주21의 경우 기존의 김대중컨벤션센터 뿐만 아니라 행사 이전에 프리페어 형식으로 동구 예술의 거리 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등 문턱을 낮추고 있다. 부산, 서울 등 일부 도시의 화랑들은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등 외연 확장에 나섰다.

호텔아트페어를 전문으로 개최하는 ‘더코르소 아트페어’(대표 장선헌)가 대표적이다. 더코르소 갤러리는 미술의 대중화와 지역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모토로 10여 년 동안 울산, 대구 등을 중심으로 호텔아트페어를 개최해오고 있다. 올 여름에는 지역의 건설업체인 영무예다음과 공동으로 부산 영무예다음 호텔에서 제1회 아트페어를 개최해 지역 작가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했다. 호텔 12~15층 전 객실을 갤러리 부스로 바꾼 미술품 거래 장터를 진행한 것이다.

장선헌 대표는 “호텔 아트페어는 세계적 추세의 새로운 미술거래 장터이며 문화 콘텐츠로 떠올랐다”면서 “작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국내외 갤러리들이 아트페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시장의 메카로 자리잡은 부산

지난 8월 취재차 찾은 가나부산은 해운대의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부산 노보텔 앰버서더호텔에서 올해 그랜드조선호텔로 이전한 가나아트센터는 자매회사인 서울옥션과 함께 아트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일년에 3~4차례 정기 기획전을 개최하는 한편 서울옥션 경매가 개막하기 전 실물을 볼 수 있는 프리뷰가 이 갤러리에서 열려 고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호텔에 숙박하는 고객에서부터 부산, 경남 지역의 20~60대 미술애호가들이 주요 고객이다. 특히 1년에 두차례 진행하는 ‘가나문화포럼’은 부산가나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부산지역 기업인들과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가나문화포럼’은 올해로 11년째를 맞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예술의 감성을 아우른 이 포럼에는 아티스트 최정화, 정호승 시인, 승효상 건축가, 곽경택 영화감독,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철학자 강신주 등 문화예술계의 스타강사들이 연사로 나섰다.

가나부산의 수석 매니저 이혜인씨는 “초기에는 50~60대 수강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30~40대 젊은 미술애호가들이 눈에 많이 띈다”면서 “다양한 인문·예술강좌를 통해 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고 그림에 관심을 갖으면서 일부는 아트페어나 옥션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전문 컬렉터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