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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진 전 전남대 교수 “광주·전남 고대사 뿌리 ‘마한’ 제대로 알려야죠”
‘우리가 몰랐던 마한…-고고학자가 들려주는 마한 이야기’
기존 통설 뒤집는 30여년 연구…광주일보 연재 묶어
마한 문화권 법제화 기여 ‘가려진 역사’ 밝히기 온 힘
2021년 08월 30일(월) 23:10
임영진 전 교수가 연구실에서 ‘우리가 몰랐던 마한…’ 집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현배 기자 choi@
지난 1990년 신진학자였던 임영진 전남대 교수는 전남도에서 주최한 제5회 전남고문화 심포지움에서 백제가 전남지역 마한(馬韓)을 병합한 것은 기존 통설인 4세기 중엽이 아니라 5세기 말~6세기 초에 해당할 것이라는 파격적인 견해를 발표했다.

당시 한 선배 교수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주류학계에 맞서면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도출한 새로운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기존 통설은 존립 기반을 잃었다.

임영진(66) 전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가 최근 ‘우리가 몰랐던 마한-고고학자가 들려주는 마한 이야기’(홀리데이북스)를 출간했다.

학계에서 마한백제고고학의 권위자로 통하는 그가 지난 30여년간 연구한 마한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한 책이다.

지난해 일반인들에게 마한을 알리고자 광주일보에 24차례에 걸쳐 실었던 특집물(고고학자 임영진 교수가 본 마한)을 보완했다.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문헌자료의 한계를 뛰어 넘어 마한의 시작과 끝을 밝혔고 의식주를 비롯한 마한의 문화를 이야기하듯 풀어내 전문가가 아니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게 특징이다.

“고조선 후기에 역사적 실체로 문헌기록에 등장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6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마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한은 농경을 바탕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가족 공동체의 유대가 남달랐던 사회였습니다. 마한이 백제, 신라와 같은 중앙집권화된 통합국가를 이루지 않은 것은 당시 가야와 마찬가지로 소국 중심의 자치와 분권 사회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마한 사회에 대해 최근의 조사,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책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임 교수는 고고학계에서 발굴 복이 많은 사람으로 통한다.

백제 초기의 서울 몽촌토성과 석촌동고분군을 비롯 광주 월계동 장고분, 나주 복암리 고분, 함평 만가촌 고분,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에 발굴했던 나주 복암리 3호분의 5세기말~6세기초의 석실에서는 4기의 마한 옹관이 출토돼 기존 통설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이 고분 옆에 고분전시관이 세워질 정도였다.

전남도의 지원을 받아 마한연구원에서 2018년에 개최했던 ‘중국 양직공도 마한제국’ 국제학술대회에서는 521년에 중국 양나라에 파견됐던 백제사신이 마한 소국들이 남아 있음을 밝혔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임 교수의 6세기 중엽설은 문헌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역사적 진실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발굴된 고고자료와 중국 양직공도가 말해주는 것은 이 지역 마지막 마한 소국들이 백제로 바뀐 시기가 530년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기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에 해당하는 160여년간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임 교수는 지난 6월 10일 발효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마한역사문화권’을 포함시킨 학술적 주역이기도 하다.

이 특별법의 2019년 원안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문화권만 들어 있었지만 2020년 확정된 수정안에는 마한문화권이 탐라문화권과 함께 추가돼 마한이 법적 지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국가의 지원 아래 조사, 연구하고 보존, 개발해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토대를 만들었다.

전남도와 정치권에서 법제화에 나서는 동안 임 교수는 논문, 학술대회, 국회 토론회, 문화재청 의견서 제출 등을 통해 마한문화권 법제화의 당위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했다.

임 교수는 원장을 맡고 있는 마한연구원을 통해 해마다 국내외 학자를 초청해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마한 연구를 독려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최대한 신진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마한 분구묘의 기원과 발전’, ‘동북아시아에서 본 마한토기’, ‘중국 양직공도 마한제국’, ‘장고분의 피장자와 축조배경’ 등 모두 8권의 마한연구총서가 전문출판사에 의해 출판돼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학술대회 발표문들이 연구책자로 발간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널리 일반인들도 구입해 볼 수 있도록 정식 출판돼 서점에서 판매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백제에 가려졌던 마한은 아직도 새로 밝혀진 사실들이 널리 인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에서 기존 통설이 그대로 수록돼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