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불 아니더라도 지옥은 가까운 곳에 있다,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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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불 아니더라도 지옥은 가까운 곳에 있다,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
김태권 지음
2021년 06월 04일(금) 12:00
피터르 브뤼헐의 ‘반역한 천사의 추락’(왼쪽)과 야반 데어 스트라트의 ‘신곡’의 삽화. <한겨레출판 제공>
몇 년 전부터 유행한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지옥의 나라’라는 뜻이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헬조선은 너무도 친숙한 단어다. 우울한 한국, 우울한 세상은 우리시대에 보편화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헬’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단어로 지옥을 뜻한다.

불지옥은 종교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불교에는 죄인을 끓는 쇳물에 집어넣는 지옥이 있고, 기독교에서는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유황불에서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지옥에서는 누구를 만나게 될까?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피렌체 편’, ‘불편한 미술관’을 쓴 김태권 작가는 “지옥에 가면 우리는 세입자가 될 것이다. 사탄이 그곳의 관리인 또는 건물주”라고 상상한다.

인류가 수천 년간 상상해온 온갖 지옥들을 소개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제목부터 이색적이다. 아니 흥미를 넘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은 지옥의 이모저모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귓가 솔깃해지는 책이다.

저자는 고전문학, 회화, 신화를 횡단하며 지옥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인간이 오랫동안 상상해온 온갖 지옥들이 펼쳐진다.

사실 지옥의 이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것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지옥이라는 관념이 대개 비슷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을 뜻하는 ‘헬’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을까. 북유럽 신화에서 헬은 여신의 이름인 동시에 여신이 다스리는 저승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옛적 북유럽 사람들은 헬 또는 헬헤임을 지옥으로 여겼는데, 이곳의 다른 이름은 ‘니플헤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안개가 낀 스산한 땅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일반적인 지옥은 뜨거운 곳으로 인식됐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쉴 새 없이 불이 타오르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팔레스타인이나 아라비아반도나 더운 지역인데 “사람들이 지옥은 뜨거운 곳이라 믿었다는 사실이 단지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신화에서 지옥 여행의 원조는 오디세우스다. 그러나 단테의 ‘신곡’에도 불지옥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지옥 외곽의 죄인보다는 무거운 죄를, 얼음 지옥에 가는 죄인보다는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다. 그런데 불지옥 깊은 곳에 오디세우스가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영웅 말이다. 단테와 단테의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는 지옥 여행을 하다가 오디세우스를 만난다.”

가장 잔인한 형벌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시시포스다. 시시포스가 벌을 받는 언덕은 그리스 신화 지옥 투어에서 가장 유명하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에는 시시포스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가 실종되는데, 시시포스는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사모해 데려갔다고 하늘의 비밀을 누설한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올려야하는 형벌에 처해진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단상이다. 저자는 “지옥 없는 천국은 천국 없는 지옥과 다르지 않다는 것. 천국이 천국다우려면 지옥이 있어야 하나 보다. 그렇다면 지옥을 닮은 현세도 혹시 천국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한겨레출판·1만4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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