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브랜드 ‘예술인’ 도시 문화자산으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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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브랜드 ‘예술인’ 도시 문화자산으로 키워야
<1> 프롤로그
클림트의 도시 ‘빈’… 모차르트 도시 ‘잘츠부르크’
윤이상 ‘통영’ 천재화가 이중섭 ‘제주’
‘예술인 마케팅’ 지역이미지 차별화
문화수도 자부 광주·전남
오지호 화백·허백련 화백 등
거장의 예술혼 깃든 ‘공간’ 관심을
2021년 05월 24일(월) 07:00
광주 동구 지산동에 자리하고 있는 고 오지호 화백의 초가(광주시 기념물 제6호).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근 30년 동안 기거하며 작업에 몰두했던 뜻깊은 공간이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4년 전,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수하물 창구로 가는 동안 모차르트의 초상화에서 부터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유디트’ 등 수많은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삼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빈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비엔나가 ‘클림트의 도시’라면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물론 빈 역시 모차르트의 숨결과 애환이 깊게 배어 있는 도시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35세라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지낸 빈을 제외하면 고향에서 25년을 보냈다. 모차르트를 배출한 도시 답게 잘츠부르크 곳곳에는 모차르트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노란색 건물 외관이 인상적인 모차르트 생가와 광장,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모차르트의 작업실 등이 재현된 박물관까지 도시 전체가 모차르트를 위한 유적지 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다양한 모차르트 기념품이다. 모차르트의 예술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공간 뿐만 아니라 소시지, 손목시계, 맥주잔, 인형, T셔츠, 와인, 머그컵, 골프공 등 어느 것 하나 모차르트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 특히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접수한 모차르트 초콜릿과 맥주는 압권이다. 이쯤되면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나다.

지난 2017년 잘츠부르크 관광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브랜드 가치는 54억 유로(약 7조원)에 달한다. 필립스·로레알 등 유명 상표가 창출하는 가치 보다 더 높다. 한해 빈과 잘츠부르크의 하루 숙박객수가 1천500만 명에 이르고 지난 2016년 국제회의컨벤션협회(ICCA)가 발표한 ‘세계관광도시’ 2위에 선정했다. 클림트와 모차르트의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국내에도 ‘예술인 마케팅’을 통해 지역의 이미지를 차별화 시키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대부분 지역 출신 문인이나 화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예술인들을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키워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남 통영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기념해 건립한 통영국제음악당.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로 클래식의 메카로 불리고 있다면 통영은 작곡가 윤이상(1917~1995)과 통영국제음악제(TIMF) 덕분에 아시아의 음악 허브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통영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었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기념해 건립한 통영국제음악당.
통영시는 윤이상의 ‘위대한 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통영국제음악당 건립은 물론 TIMF 창설, 그리고 지난 2015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선정 등 ‘윤이상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펼쳤다.

제주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
이와 반대로 제주도는 천재화가 이중섭과의 짧지 않은 ‘인연’을 문화상품으로 키워냈다. 한국전쟁을 피해 이 화백이 가족과 함게 서귀포에 1년간 머물며 창작했던 정방동의 초가 옆에 지난 2002년 ‘이중섭 미술관’을 건립한 것이다. 또한 제주시는 이중섭 미술관을 거점으로 이왈종 미술관, 김창열 미술관, 추사관(추사 김정희 유배지) 등 제주와의 특별한 스토리를 ‘구슬’로 꿰어내 매년 수십 만 명의 다녀가는 투어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수도를 자부하는 광주·전남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한국화단이나 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이들을 도시 브랜드로 키우는 데는 소홀했다. 서양화단의 선구자 고 오지호(1905~1982) 화백과 남종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이 대표적이다.

오 화백이 조선대 교수로 재작하던 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근 30년 동안 기거했던 광주 지산동 초가(광주시 기념물 제6호)는 ‘기념물 지정’으로 재산권 침해를 받았다며 해제를 요구하는 일부 주민들로부터 수십 년간 시달렸다. 한때 건설사의 아파트 건립을 지지하는 일부 주민들로 인해 사면초가의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 동구청이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일단락 된 상태다. 현재 오 화백의 유족은 초가와 고인의 둘째 아들인 고 오승윤 화백의 작업실을 비롯 주변을 동구를 대표하는 ‘아트센터’로 꾸미기 위해 사단법인을 추진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지호 화백의 고향인 화순군의 상황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고인의 탯자리인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건립한 오지호 기념관은 무늬만 기념관으로 전락한 상태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전시실과 수장고를 갖추고 있지만 전시된 작품은 소묘작품 ‘풍경’ 1점 외에는 모두 복사품이다. 그의 대표작은 고사하고 진품이 거의 없다 보니 이 곳을 찾은 대부분의 방문객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약을 통해 1~2년에 한두차례라도 작품을 임대해서 전시하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지만 이렇다할 행정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증심사 기슭에 개관한 의재미술관 전경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화백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의재 미술관’ 역시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의재미술관은 유명 건축가 조성룡씨가 설계해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명품 미술관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한채 후손들의 힘으로 학예사 인건비 등 제반 운영비를 부담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광주에서 유일하게 남종화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공간이지만 시설이 노후화 되면서 막대한 보수 비용과 전기세 부담으로 휴관을 거듭하다 현재는 개관 20주년(11월)을 앞두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근래 국내외 도시들은 다양한 축제와 특산품으로 도시를 홍보하는 마케팅을 펼친다. 하지만 우후죽순 처럼 많은 축제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또한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콘셉트의 축제가 많아 도시의 차별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게 바로 인물, 특히 ‘예술인’이다. 지역 출신 예술가들은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는 훌륭한 마케팅 자산으로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사람이 브랜드인 시대다. 특히 문학이나 그림, 음악을 통해 대중과 공감해온 예술인들이야 말로 도시를 빛내는 최고의 브랜드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의정부(서양화가 백영수)를 비롯해 경남 통영(윤이상, 박경리, 전혁림) 서울(윤동주 외), 부산(이우환, 금난새 외), 강원도 양구(박수근·박인환), 제주(이중섭, 김창열) 등 국내 6개 도시와 모차르트와 클림트의 도시 오스트리아, 민중미술가 케테 콜비츠와 바우하우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독일 베를린,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와 작곡가 드보르작을 배출한 체코 프라하를 현장 취재해 14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예향의 미래를 여는 뜻깊은 여정이 되길 바란다.

/박진현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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