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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인재 찾기를 포기한 정권들
2021년 01월 07일(목) 06:00
인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성공한 군주들의 통점이었다. 그러나 인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짜 인재는 정권에 아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는 천민(天民)을 들었다. 천민이란 자신의 도를 온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출사하고, 그렇지 못하면 시골에 묻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 순자(荀子)는 대유(大儒)를 들었다. 대유란 “아무리 궁하게 살아도 왕공(王公)이 그와 명성을 다투지 못하고, 대부(大夫)의 지위에 있으면 한 나라가 그를 독차지하지 못하며, 백 리의 땅을 다스리면 천 리를 가진 나라가 그와 승부를 다투지 못한다”는 존재이다.

순자는 대유에 대해 “현달하면 천하를 통일시키고 곤궁하면 홀로 그 이름을 귀하게 한다”라고 덧붙였다. 뜻을 얻어 출사하면 그 나라를 발전시키고 천하를 통일시키지만, 곤궁하더라도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천민이나 대유는 군주가 부른다고 감읍하면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했다.

중국사에서 삼고(三顧), 융중(隆中), 초당(草堂) 등은 촉한의 제갈량을 뜻하는 말들이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촉상’(蜀相)에서 “승상의 사당을 어디 가 찾으리오/ 금관성 밖 잣나무가 우거진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라고 노래한 그 승상이 제갈량이다. 유비가 서서(徐庶)의 천거를 받은 후 남양(南陽) 융중에 은거해 농사를 짓던 제갈량을 찾았을 때 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한참 기다려 제갈량을 만날 수 있었고, 그것도 세 번이나 찾아가서 겨우 등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유비의 촉(蜀)은 조조의 위(魏), 손권의 오(吳)와 중원을 셋으로 나누어 패권을 다툴 수 있었다.

고려 말에는 ‘삼은’(三隱)이 있었다. 은거하던 세 명의 선비라는 뜻이다. 야은(冶隱) 길재, 목은(牧隱) 이색,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바로 그들이다. 이숭인의 시 중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융중에서 길게 휘파람 불던 한 포의가/ 저물녘에 용처럼 날아 한(漢)나라의 기틀을 붙든 것을”(君不見隆中長嘯一布衣/歲晩龍翔扶漢基)이라는 구절이 있다. 융중에서 은거하던 한 포의가 늘그막에 세상에 나와 한(漢)나라의 기틀을 세웠다는 것이다.

조선 숙종 때 소론 영수였던 명재 윤증의 시구에는 “초당의 단잠을 깨운 것이 헛것이 되었다”(虛破草堂眠)라는 구절이 있다. 제갈량이 출사했으나 결국 중원을 통일하지 못한 채 촉이 망했기 때문에 초야의 제갈량을 불러낸 것이 헛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비는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제갈량에게 “만약 사자(嗣子: 아들)가 보필할 만하거든 보필하고, 재주가 없다고 생각되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하시오”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이 보필할 만하면 보필하되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왕이 되라는 당부였으니 초야의 포의거사를 세 번이나 찾아간 유비의 그릇을 알 만하다.

반명(盤銘)이라는 말이 있다. 반(盤)은 세숫대야이고 명(銘)은 그 세숫대야에 새긴 글이다. 은(殷)의 중흥 군주인 탕(湯)이 세숫대야에 “진실로 하루가 새로웠다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야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글귀를 새겨 놓고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 되새겼다는 글이다. 탕 임금은 신야(莘野)에서 농사짓던 이윤(伊尹)을 등용해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무너뜨리고 은나라 천하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천하의 인재를 두루 찾지 않고 비선이나 하자 있는 인물들만 등용했기 때문이다. 촛불 덕에 집권한 현 정권도 울타리 내 사람만 쓰고, 하자 있는 인물들만 등용하니 세상이 다시 조롱하는 지경이 되었다. 역사를 ‘앞선 수레바퀴’라는 뜻의 전철(前轍)이라고도 한다. 앞의 수레가 엎어지는 것을 보면 그 길로는 가지 말라는 뜻이다. 한데 먼 과거도 아니고 바로 앞 정권이 넘어진 덕분에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다시 그 길로 가고 있니 이해하기 힘들다. 권력을 천하의 공물(公物)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유물(私有物)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나오는 고질병이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