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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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인터뷰
소설 김정숙 “책은 내 인생에 커다란 획 그어 줘”
시 이서영 “마흔 중반 찾아온 시 첫사랑에 빠져”
동화 김효진 “문학은 창문…열 때마다 새 풍경보여”
2021년 01월 07일(목) 00:00
김정숙
문청 시절 가장 절박한 바람이 있다면 바로 신춘문예 당선일 것이다. 문학을 업으로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12월과 1월은 가혹한 달이다. 작품 공모와 심사 그리고 당선작 결정, 시상식이 연말과 연초 사이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리는데 작가 지망생들의 심정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하기 그지없다.

202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도 많은 문청들이 응모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시 1715편, 소설 213편, 동화 195편 등 모두 2123편이 접수됐다. 예년 수준의 현황을 보인 가운데 김정숙 씨의 ‘등고선’(소설), 이서영 씨의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시), 김효진 씨의 ‘8구역 배추자 여사’(동화)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기자는 최근 열린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당선 작가들과 인터뷰를 했다.

김정숙 소설가는 당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등단은 내 인생의 유턴의 시점이다”며 “이제 흉내가 아닌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됐는데 기쁨으로 엉덩이 싸움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창작을 하는 동안 전업작가를 흉내 내듯 오전 9시를 시작으로 5시에 마치길 계획하고 실천했다”며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삶은 지독하게 행복해졌다”고 밝혔다.

이서영
이서영 시인은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얼어붙어서 쉽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며 “그동안 저장해 둔 시도 별로 없고 ‘나의 시는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등단해도 되는지 두렵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효진 동화작가는 “시상 할 때까지도 어리둥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욱더 진해지는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만큼 앞으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온전한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세 당선작가들은 어떤 계기로 문학에 입문하게 됐을까. 저마다 인고의 습작 기간이 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이 됐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티켓’을 거머쥐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있었을 거였다.

“열다섯의 가을, 친척 동생이 백혈병으로 죽었어요. 사람들이 돌로 무덤을 쌓을 때 바람을 맞으며 한움큼의 억새를 꺾어 돌무덤에 놓았습니다. 그날 밤 뭔가에 홀린 듯 글을 썼는데, 몸이 꺾인 억새가 붉은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었죠. 그때부터 문학소녀 흉내를 냈던 것 같아요.”(김정숙)

“6년 전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깊은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시시 때때로 웅얼거림이 생겼어요. 아무도 몰래 가 웅덩이를 향해 울었습니다… 얼마 후 주변의 권유로 뭔가를 배우기로 결심했구요. 담양 생오지 문예창작촌의 시창작교실에서 시를 처음 만났습니다. 말을 배우는 것처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셈이죠.”(이서영)

“어릴 때부터 책 읽고 무언가를 메모하고 생각을 적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중에 대학을 문예창작과에 가게 되었죠. 다른 사람들은 과의 특성이 맞지 않아 방황을 많이 했는데 저는 문학과 관련된 이론을 다방면으로 배우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에 입문한다고 바로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성취를 이루기까지는 슬럼프가 오거나,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김정숙 작가는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조급해졌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소설을 쓰는 건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김 작가는 “이 길을 계속 가도 된다는 응답이 간절했다”며 “다섯 명으로 구성된 ‘길나힘’ 문우들과 공부하다 새로운 스승을 찾게 됐고 그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서영 시인은 쓰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마흔 중반에 찾아온 시의 첫사랑에 푹 빠졌다. 그러면서 “시를 쓰지 못할 때, 그때는 책을 읽었다”며 “아무 것도 없이 텅빈 상태가 되면 다시 무언가 채워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때가 되면 시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며 “시 쓰는 문우들과 교류하며 이런 고민들을 공유했던 것이 시를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김효진
김효진 동화작가는 일상적인 고민이나 스트레스는 간단한 취미생활이나 수영, 걷기 등을 통해 푸는 편이다. 하지만 “슬럼프라고 말할 정도의 고민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면서도 “그냥 빠져서 허우적대고 버티는 방법밖에 모르는데, 보통은 새로운 고민이 생겨서 다른데 신경 쓰느라 저절로 잊혔던 것 같다”며 웃었다.

세 당선작가들은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문학소녀 시절이나, 습작기에는 흠모하는 작가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중학교 때 단짝 벗과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를 읽고 ‘자크’와 ‘다니엘’을 흉내 내듯 회색 노트에 일기를 쓴 뒤 교환했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시작된 벗과의 교류는 오랜 시간 계속되었죠. 그런 의미로 ‘회색 노트’는 내 인생에 커다란 획을 그어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정숙)

“시 공부 했던 곳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들의 시집을 즐겨 읽었습니다. 특히 박순원 시인의 시는 제 시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가끔이지만 제 시에 나타나는 어떤 위트와 아이러니 같은 것, 중얼거림, 묘사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던 점이 그렇습니다.”(이서영)

“로알드 달, 아스트리드 린드 그렌, 정채봉 선생님 책을 지금도 곁에 두고 있습니다. 여유시간이 나거나 글을 쓰다가 막힐 때 한 번씩 훑어봅니다. …또한 저는 문학을 창문이라 생각합니다. 열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보이거든요.”(김효진)

이제 막 당선이라는 ‘자격증’을 쥐게 된 세 작가의 앞에는 문학이라는 길고 지난한 여정이 놓여 있다. 신춘문예 당선은 말 그대로 당선일 뿐이며, 그 자체로 작가 인생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후의 과정을 어떻게 헤쳐 가느냐에 따라 저마다 문학인생의 열매는 다르게 맺힐 것이다. 이들의 문학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길 기대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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