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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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일상의 감각 잡아채려는 의지 돋보여”
2021년 01월 04일(월) 00:00
-이병률 시인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 문학동네 계열사 출판사 달 대표 ▲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등 다수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우리들의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 해 동안 내면으로부터 쉼 없이 길어 올린 언어들을 대면하는 일은 축제 같았다.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삶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시는 삶의 어떤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 언어 형식 안에는 삶의 여러 단면들을 통해 즐겁거나 기쁘고, 아름답거나 시린 우리네 조용한 비명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이번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시들 중에는 ‘사람과 언어가 만나 전류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 숨이 찼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현이령은 조근조근하고 잔잔해서 뭔가 있을 듯하여 아주 여러 번을 읽지만 결국 분위기만 읽혔다. 김완두는 발랄함과 특이한 시선이 개성이 무기인 듯하지만 의외성과 유아적인 밑그림을 받치고 있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김영숙의 시는 일상적이며 사변적인 틀에 걸려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홍여니는 읽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서만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은 건 이서영과 엄경은의 시. 이서영의 ‘뭉클’과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뭉클’은 선명해서 맑게 다가온다. ‘잊다…’는 숨기면서, 드러내면서, 은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또한 특유의 건조함이 세련된 미학을 만들고 있다. 엄경은의 ‘기본과 기분’은 무엇이 시로 탄생되는지를 잘 아는 숙련된 예비 시인의 작품이라 감탄했다. 하지만 ‘기본’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가 ‘기분’을 언급하면서 맺는 한 줄이 시 전체를 단번에 파괴하는 느낌이었다.

이서영의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자칫 흘러버리기 쉬운 일상의 감각을 잡아채려는 의지와 선명하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환대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화법이 아름다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칙칙하기만 한 세상에 더 많은 울림들을 차려놓기를 바란다.



















이병률 시인

▲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 문학동네 계열사 출판사 ‘달’ 대표

▲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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