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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2020년 11월 25일(수) 23:00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강의 권력기관은 검찰이다.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은 물론 영장 청구권마저 독점하고 있다. 검찰은 과거 임의적인 잣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해 권력의 시녀로 지탄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오로지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검찰의 막강한 힘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검찰에 해당하는 조직은 사헌부였는데, 요즘의 검찰처럼 그 권위와 위상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는 사헌부의 또 다른 이름이 ‘상대’(霜臺)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서리 ‘상’(霜) 자가 들어가는 그 별칭만 들어도 ‘추상(秋霜)같다’라는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가.

사헌부의 직무는 ‘백관(百官)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억울한 일을 풀어 주고 협잡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사헌부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기관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관 즉 모든 관리를 규찰할 수 있다는 규정(경국대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특권이 주어졌다. 첫째가 풍문거핵 (風聞擧劾)이다. 떠도는 소문만으로도 고위 관료를 탄핵할 수 있는 권리. 둘째는 불문언근 (不問言根)이다. 자기들이 주장한 사실의 근거를 대지 않아도 무방했다.

사헌부 구성원들을 대관(臺官)이라 했는데 이들의 직급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헌병이 일반 장교 잡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벼슬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령 사헌부 관원들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했다니 말이다. 당대의 권신 한명회도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끝내 파직됐다.



사헌부 예찬한 ‘상대별곡’



사헌부 외에도 조선시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기관으로는 임금을 상대로 직언을 하는 사간원이 있었다. 사간원의 분위기는 자유분방하기 이를 데 없어 심지어 공무 중 술을 마셔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사헌부의 근무기강과 위계질서는 엄격했으니 길을 갈 때도 직급 순서대로 걸었다고 한다. 철저히 상명하복에 충실한 오늘날의 검찰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사헌부 관리들은 자부심도 대단했는데 이를 보여 주는 노래가 있다. 조선 초기 정종 때 대사헌을 지낸 권근이 지은 ‘상대별곡’(霜臺別曲)이다. 상대별곡의 노랫말에는 사헌부의 엄숙한 기풍 및 관원들의 기상과 자기과시가 드러난다. 그래서 사헌부 관리들은 회식이 있을 때마다 ‘사헌부 예찬가’인 상대별곡을 기세 좋게 훤창(喧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막강한 사헌부도 오늘날의 검찰처럼 개혁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조선 중종 시절, 정암 조광조는 왕에게 사헌부와 사간원의 전면적 개혁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당시 보수 세력인 훈구파가 연산군을 몰아낸 덕분에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중종은 이들의 권세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는 ‘허수아비 임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훈구파들에게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다.

이때 마침 정암의 상소가 올라오자 중종은 이를 받아들여 조광조를 제외한 사헌부·사간원 소속 벼슬아치 전원을 해임했다.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없앤 것이다. 그러나 이후 중종은 조광조를 전격 투옥하고 사형시켰다. 저 유명한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이다. 왕이 그쯤해서 개혁을 중단시킨 것은 아마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세력이(그게 어느 쪽이든) 너무 강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을 생각하면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른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모 인사가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됐던 말이다. 조국을 조광조에 비유한 이 말에 한양 조씨 문중에서는 즉각 ‘말도 안 된다’며 분노했다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먼저 둘 다 검찰(사헌부)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암이 중종의 사랑을 받았듯이 조국도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이 검찰 개혁의 운도 떼어 보기 전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사헌부 관리들이 반드시 스스로를 깨끗이 한 후에야 남을 공박했던 사실을 거울로 삼았어야 했다. 본디 탄핵이라는 것이 상대의 목을 취하지 못하면 자신의 목을 내놓아야 하는 행위였기에, 누군가를 탄핵하려면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해야 했던 사헌부 관리들을 본받았어야 했다. 개혁은 언제나 풍파를 초래하는 매우 힘든 정치적 작업이라는 것을 왜 몰랐던가.



검찰 개혁 누가 걸림돌인가



그 검찰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끝없이 계속되는 추·윤 싸움을 우리는 지겹게 지켜보고 있다. 검찰총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는 딱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추미애(법무장관)와 윤석열(검찰총장) 둘 중 누가 옳은지 헷갈려 한다. 다만 한때 여당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둘 다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민은 달을 보라는데 두 사람 다 손가락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견월망지(見月忘指). 지엽 말단에 얽매여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장기간 계속되는 코로나 유행으로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판에, 사사건건 맞서는 이들의 ‘아귀다툼’은 국민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안기고 있다. 이러는 사이 검찰 개혁은 산으로 가고 있는지 강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추 장관은 급기야 엊그제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 명령까지 내렸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윤 총장의 언행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무를 배제할 정도까지 되는지, 그처럼 ‘중대 비위’인지는 아무래도 의혹의 사실 관계를 좀 더 따져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윤 총장 또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위법 부당한 처분에 대해 법적으로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어찌 됐든 법무장관이 감찰권을 활용해 현직 총장의 직무를 배제한 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윤 총장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검찰 개혁의 걸림돌은 오히려 윤 총장일지도 모른다. ‘검찰 중립’이라는 미사여구 뒤에 숨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누구보다도 더한 ‘검찰 지상주의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 훗날 역사는 윤 총장을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게 될까?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다만 한 가지, 윤 총장이 권력 심층부에 맞서 끝까지 자기 조직만 지켜낸 인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