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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나의 큰 바위 얼굴
2020년 11월 03일(화) 02:00
이 정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얼마 전 영암의 월출산에 갔다가 뜻밖에 ‘큰 바위 얼굴’을 보았다. 월출산은 기기묘묘한 암봉이 많아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형상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긴 하다. 그럼에도 큰 바위 얼굴의 원조격인 미국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고 얼굴 형상이 뚜렷하였다.

혹자는 화이트 마운틴의 큰 바위 얼굴이 무너져 내린 지 5년 만에 그 다섯 배가 넘는 웅장한 모습으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비과학적인 것은 도통 믿지 못하는 의심쟁이 무신론자인 필자도 이 거짓말 같은 전설을 굳게 믿는다.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한다.

‘큰 바위 얼굴’은 어린이들의 마음속 우상을 뜻한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으로 옛날에는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바위산에 나타난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언젠가 큰 바위 얼굴처럼 생긴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거라고 믿으며 자란다.

엄청난 부자가 큰 바위 얼굴이라며 나타났지만 닮지 않았다. 유명한 장군, 정치가, 시인이 나타났지만 모두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어니스트가 전도사가 되어 설교를 하던 중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다고 소리친다. 평범하지만 올바르게 살아가는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었던 것이다.

필자에게도 나만의 큰 바위 얼굴이 있다. 놀라지 마시라. 나의 큰 바위 얼굴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편협한 국수주의 애국주의자라고 놀려도 좋다. 필자가 여러 강의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이유를 수많은 근거를 들어 열변을 토했지만 청중들은 잘 믿지 않는 눈치였다.

세계 일곱 번째 3050클럽(국민 소득 3만 불 이상 국가 중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인 나라) 회원이며, 세계 다섯 번째 경상수지 흑자국, IT 인프라, 평균 수명, 치안, 위생, 도시 인프라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 등 우리가 선진국인 근거는 차고도 넘친다. 수많은 근거에도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나머지 저성장 기조를 처음 경험해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큰 바위 얼굴’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일지 모른다고 우리 국민들도 믿기 시작했다. 최고의 IT 기술을 기반으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전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K방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원조 큰 바위 얼굴 미국은 어떤가?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명백한 방역 실패다. 그럼에도 경제 또한 최악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필라델피아 중앙은행은 올해 연말까지 미국의 세입자들이 내지 못하는 집세가 총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전세 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근로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순간 월세를 감당할 길이 없어 바로 길거리로 나가야 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임차인의 4분의 1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3000만~4000만 명의 세입자가 퇴거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미 정부가 코로나19의 대응 조치로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을 집주인이 쫓아내지 못하도록 한 조치가 내년 1월에 종료하기 때문이다. 원조 큰 바위 얼굴의 몰락이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서 글로벌 연대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이야말로 ‘프라이버시’와 ‘공중 보건’이라는 가치를 조화롭게 달성한 모범국으로 칭송하였다. 유발 하라리가 무너진 미국 화이트 마운틴 큰 바위 얼굴의 대안을 찾는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한민국을 찾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의기양양하게 그를 월출산으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