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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금방 올게”…한국전쟁 이산가족의 70년 기다림
기다림
김금숙 지음
2020년 10월 23일(금) 00:00
작품의 시작은 20년 전 엄마가 들려준 ‘가족 이야기’였다. 엄마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헤어진 언니를 꼭 만나고 싶다고, 생사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이산가족 상봉 리스트에서 매번 제외될 때마다 슬퍼하는 엄마를 보며, 그녀와 같은 이산가족을 통해 바라본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그려보자 다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주인공이 ‘귀자’다.

올해는 한국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갔고 그 아픔은 지금까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가 담긴 묵직한 작품들을 그려온 만화가 김금숙 작가가 오랜 시간 자료 수집과 조사, 집필을 통해 이산가족에 대한 작품 ‘기다림’을 펴냈다.

고흥 출신인 저자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풀’로 찬사를 받았다. 전 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된 ‘풀’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 최고의 만화,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선정됐으며 최근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다림’은 소설가 진아가 들려주는 어머니, 귀자의 인생 이야기자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이야기이며, 세계 도처에서 가족과 생이별하며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작품은 화자인 진아의 목소리를 통해, 귀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어진다.

‘귀자’는 함경남도에서 방앗간집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일본군이 결혼하지 않는 처녀를 전쟁터로 끌고 간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결혼을 하고 해방을 맞는다. 하지만 6·25가 터지고 남편, 첫째 아들 상일, 둘째 민혜와 떠난 피난길에서 남편, 상일과 헤어지고 만다. “엄마.” “엄마 금방 올게. 아빠랑 있어.” 그게 아들 상일과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부산에서 새롭게 가정을 이루고 막내딸 진아 등 네 아이를 낳지만 상일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아들을 찾아 주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리면 진아는 죄스러운 마음이 더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는 신청자는 너무나 많고 그 기회는 너무나 적다.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는 어머니와 틈틈이 인터뷰를 하고 관련 자료 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평양에서 살았던 시절, 전쟁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기록했다. 또 2018년 21차 이산가족상봉 때 북한의 가족과 만난 인터뷰를 진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개성있는 그림체다. 특유의 섬세하고 힘 있는 붓그림으로 재현된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세종대 회화과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 박완서 원작을 만화로 재구성한 ‘나목’ 등을 펴냈다.

<딸기책방·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