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서효인의 ‘소설처럼’] 치유의 소설
김금희, ‘복자에게’
2020년 10월 08일(목) 00:00
제주도 곁의 섬에 간 적이 있다. 섬에 들어가는 배에서는 섬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유명 가수의 노래가 반복 재생되었다. 제주도와는 또 다른 결의 풍광에 출장이라는 것도 잊고 바람 냄새를 맡았다. 섬이 차가 다닐 만큼은 크지 않은데, 걸어 다닐 만큼 작지도 않아 우리는 자전거를 빌렸다. 그다지 보관이 잘 되었거나 신형이라고 할 수 없는 자전거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삐걱삐걱 몰았다.

섬에 왔다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몰라서 관두고 말았다. 날은 맑고 파도는 섬의 곁에 와 부딪히고 부서지고 다시 일었다. 당신은 그저 왔다 가면 그만이라는 듯이.

김금희의 장편소설 ‘복자에게’를 읽으며 짧은 여행의 반가운 기시감을 페이지마다 만날 수 있었다. 작가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으로 표현된 ‘고고리섬’과 제주도는 한 번쯤 그곳에 가닿고 싶다는 여행자의 심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내가 여행자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그곳에 갔다 오면 그만일 테다.

‘복자에게’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거나, 생애 가장 중요하고 미묘한 시기를 제주도에서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장되지 않되 생생한 제주 사투리가 등장함은 물론, 4·3에서부터 해녀 조합, 지역 의료원 사태까지 그곳의 삶과 역사가 소설의 크고 작은 모티브가 된다. 그러한 제주의 모티브는 주인공 이영초롱과 복자가 이어지듯, 공간적 특수성에서 역사적 보편성으로 스미듯 나아간다. 개인적 감정에서 공동체가 공유하는 감각으로 기어코 번진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판사가 된 이영초롱은 중학생 시절, 갑작스레 기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제주도 고고리섬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고모와 지내게 된다. 순탄치 못한 판사 생활 끝에 제주에서 근무를 하게 된 그는 고고리섬에서 살던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복자’와 자신을 짝사랑했던 친구 ‘고오세’와 재회하게 된다.

‘고복자’는 지역 의료원과 힘겨운 법정 다툼 중이고, 지역 유지 혹은 권력자와의 싸움이나 다름없는 이 송사에 의료원의 퇴직 간호사이자 개인에 불과한 복자가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초롱은 친구의 재판에 참여하게 된다. 사건을 살펴볼수록 영초롱의 논리와 마음은 한쪽으로 기운다. 그 기움이 재판관으로서 영초롱에게 위기가 되고, 그 기움의 과정에서 그가 몰랐던 주변인의 비밀과 과거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타의에 의해 제주에 반복해 떠밀려 와야 했던 개인의 감정, 그것을 오롯이 받아준 섬의 감각. 이 둘의 만남과 헤어짐이 ‘복자에게’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 듯하다. 복자의 고모는 민주화운동의 상흔이 남아 있고, 복자에게는 섬사람들의 뒷말거리가 된 채 섬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가 있다. 제주도 곳곳에 4·3의 아픔이 물리적인 실체로 남아 있듯이, 고달픈 현대사의 상처가 지금까지 이어지듯이, 여기에 발붙여 버티고 사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고통과 슬픔이 모두 다른 모양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판사와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에서부터 섬마을의 어민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다. 그런 마음이 마음에게로 편지를 보낸다. 마음을 발신자로 하여 역시 다른 마음을 수신자로 한 편지가 섬마을의 우체통에서 시청역 4번 출구 우체통까지 전해진다. ‘복자에게’는 그럼으로써 치유의 가능성이 담긴 하나의 편지가 된다.

어떤 소설은 약이 된다. 치유의 자장가가 된다. 소설 속 노래의 마지막 구절처럼. “웡이 자랑 자랑 자랑 / 느네 애기 재와주마 / 워이 자랑 워이 자랑 / 곱게 곱게 키와줍서”

영초롱과 복자는 모두 잘 살 것이다. 과거에 발목 잡힌 채로, 그 발목을 쓰다듬으며. 그 과정에 제주의 섬과 바다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고고리섬의 돌멩이처럼, 영원히 빛나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