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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 사라지게 된다면
2020년 09월 09일(수) 00:00
영국 리버풀의 ‘경리단길’쯤 되는 블루코트에는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고풍스런 책방이 있다. 올해로 33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브라이언과 알린부부의 ‘커나한 북스’(Kernaghan Books)다. 리버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1717년 건립) 1층에 자리한 서점은 아름다운 안뜰을 품고 있어 서점이라기 보다는 근사한 문화공간 같다.

2년 전 만난 60대 중반의 커나한 부부는 책과 함께 청춘을 보낸 주인공들이다. 아일랜드 출신인 브라이언은 영국 버밍엄햄의 대학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취업 대신 평소 좋아하던 책과 함께 살기로 의기투합했다.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책을 사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이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종종 도서관에 저를 데려가 마음껏 책을 읽도록 하셨어요. 그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행복한 기억이 계기가 됐죠.”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를 직업으로 선택한 브라이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30여 년간 책방지기로, 그것도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버텨낸 ‘힘’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클릭 한번이면 편하게 집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는데, 우리 단골들은 일부러 책을 사러 옵니다.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책방의 독특한 낭만 때문이지요.”

지난 2018년 광주일보의 ‘도시의 아이콘, 동네책방’를 취재할 때 접했던 에피소드의 일부다. 당시 동네의 한 귀퉁이에 자리했던 국내외 책방들은 독특한 북큐레이션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오프라인 서점수는 10년 사이에 36.9%로 줄어든 2312개(2019년 기준). 반면 동네책방은 2015년 101개에서 650개(2020년 3월기준·퍼니플랜 자료)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얼핏 외형적으로는 풍성해 보이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인터넷·대형 서점 등에 맞서 근근히 수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동네책방의 운명을 가를 적신호가 켜졌다. 산소호흡기와도 같았던 도서정가제(도정제)가 오는 11월 타당성 검토 시한을 앞두고 정부가 (도정제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도정제 완화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도정제는 책 가격의 할인폭을 정가의 15%로 제한하는 것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출판계나 작은 서점에게는 인터넷 서점등의 물량공세에 버틸 수 있는 카드나 다름없다.

하지만 일부 젊은층 사이에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라며 폐지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도정제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서점측은 만일 도정제가 폐지되거나 추가할인이 허용되면 서점 1000개가 문닫게 된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물리적 공간만은 아니다. 특히 동네책방은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 실핏줄 같은 존재다. 출판의 다양성을 해치는 정부의 도정제 ‘개악’은 재고돼야 한다. “도정제를 포기하는 것은 문화국가를 포기하는 것이다”. 생존 기로에 선 출판·문화단체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다가온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