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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도로 공사 때 방치한 토사 폭우에 흘러내려 피해 키워
5명 목숨 잃은 곡성 산사태
산사태 ‘심각’ 단계 발령 불구
당국 아무런 안전조치 없어
2020년 08월 10일(월) 00:00
지난 8일 오후 곡성군 오산면 한 마을 뒷산에서 산사태 발생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이 무너져 있다. 전날 발생한 산사태로 5명이 매몰돼 5명이 사망했다. /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당국의 안일함이 사태를 키운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사태 위기 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이 발령된데다, 곡성에 산사태 취약지역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집중호우를 대비해 도로 포장공사로 발생한 토사에 대한 안전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 포장공사를 위해 도로와 야산에 쌓아놓았던 토사가 빗물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흘러내려 참사로 이어진 점을 들어 주민들 사이에서는 산사태 예방 조치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중호우 예보·산사태 위기경보에도, 안전조치 없어=9일 전남도와 곡성군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오후 8시 30분께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뒷산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려 주택 4채가 매몰됐고 주택 내부에 있던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대 주민들은 마을 위쪽에서 진행중이던 국도 15호선 도로공사를 산사태 야기 주범으로 꼽고 있다. 집중호우가 예보됐고 산사태 위기 경보가 내려졌음에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토사에 대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전남도는 고흥~보성~순천~화순~곡성~담양으로 이어지는 국도 15호선(168.4㎞) 공사의 하나로 이 일대 마을 위쪽에서 굽은 도로를 펴는 직선화 공사를 진행해왔다.

성덕마을 주민 김모(52)씨는 “전형적인 인재”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는 “도로 공사를 위해 상당한 양의 흙을 두 달간이나 산 비탈면에 쌓아놓았다”면서 “장맛비와 집중호우가 예보된 뒤에도 방수포로 덮어 씌우는 등의 산사태 예방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국적으로 산사태 ‘심각’ 경보가 발령되고 집중호우가 예보된데다, 곡성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산사태 취약지역이 많은데도 대비에 소홀했다는 게 주민들 지적이다.

사고 발생 지역은 전남도가 꼽은 ‘전남 2361곳의 산사태 취약지역’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연히 곡성 산사태 발생 하루 전 이뤄졌다는 전남도의 ‘산사태 취약지역’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전남도의 ‘산사태 취약지’ 점검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위험도·붕괴가능성·면적·잠재적위험요소·피해가능성·지형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겨 정해진다. 이번 사고 지역은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보면 산사태 취약지역은 아니라는 것이 전남도의 해명이다.

8일 오후 전남 곡성군 오산면 한 마을에 산사태로 토사가 쏟아져있다. 전날 발생한 산사태는 주택을 덮쳐 5명이 매몰돼 모두 숨졌다. /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도로공사로 쌓아놓은 토사가 사고 키워”=도로공사로 쌓아놓은 흙이 빗물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흘러내렸고 이 과정에서 오랜 비로 약해진 주변 흙까지 합쳐져 마을로 쏟아졌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마을주민 양모(82)씨는 “오랫동안 도로와 산비탈 등에 흙을 그대로 쌓아놓으면서 공사가 진행중인지, 중간에 멈춘 것인지 모를 정도로 방치해놓았다”면서 “주민들은 비가 내리면서 매일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전남도도 “자연사태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아니다”고 언급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도로 위에 있는 토사가 폭우로 흘러내려 국도 15호선 도로공사 지점부터 (산사태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사고는 자연사태의 원인에 의한 산사태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도로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시작됐다는 게 전남도 산림보전과측 입장으로, 주민들 주장과 비슷한 취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책임론이 불거지자 공사를 맡은 전남도 도로관리사업소는 관련 자료를 일절 공개하지 않으면서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도로관리사업소는 해당 부지 내 쌓여있던 토사량·토사 위치·사업개요·예방조치 등에 대한 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남도 도로관리사업소측은 “공사 과정에서 토사로 옹벽 등 일부구조물을 쌓아 두긴 했지만 마을에서 500m가량 떨어진 도로 사면 일부가 유실된 것이 마을을 덮칠 산사태로 발생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도로관리사업소측은 또 “곡성 인근은 화강풍암토 지반이 많아 원래 산사태 취약지역이 많은 곳”이라면서 “원래 지반이 약해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 그친 뒤 산사태 위험 커져=산림 전문가들은 집중호우가 멈췄지만 태풍 영향으로 또 비 예보가 내려졌고 이미 많은 양의 비가 지반에 스며들면서 지반이 약해져 안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당장, 이번 폭우로 곡성에서만 17곳에서 토사가 유출되는 피해가 발생했고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담양군 무정면에서도 산사태가 발생, 주택 4채가 파손되는 등 산사태가 잇따랐다. 광주·전남에 지정된 ‘산사태 취약지역’ 뿐 아니라 우려되는 급경사지 등에 대한 전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광주지역의 경우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75곳이 지정된 상태다. 전남도는 경북·강원 다음으로 많은 2361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전남의 경우 산사태 취약지역에만 928개 마을이 들어서있으며 6052명이 살고 있다. 위험도가 높은 A·B등급만 2360곳에 이른다. 곡성에서만 산사태 취약지가 203곳으로 22개 시·군 중 순천(265곳), 화순(227곳) 다음으로 많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곡성=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