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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에게 마이크를···
2020년 07월 15일(수) 00:00
“노래방에서 계속 혼자만 노래하는 부장님의 마이크를 빼앗아 막내에게 쥐여 주고 싶었달까.” 이 구절을 읽고 뜨끔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고 다른 의견엔 귀를 닫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뜨끔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구절은 ‘광주에 연고는 1도 없는’ 두 명의 젊은이가 펴낸 인터뷰집 ‘요즘 광주 생각’의 프롤로그에 보인다. 두 사람은 광주·서울·베를린 등에서 만난 10명의 사람들에게 ‘1980년 광주의 5·18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책에는 20~30대의 목소리만 담았다. ‘광주에 대해 잘 아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많으니’ 그냥,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그동안 듣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광주보다 앞으로의 광주가 궁금해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고 한다.

올해 우리는 5·18 40주년을 맞았다. 이제 5월 진상 규명의 목소리는 놓지 않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5·18’의 미래와 ‘5월과 광주’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게 펼쳐져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5·18의 무게에 눌려 혹시 광주가 5월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주변에 알리는 방식이 경직돼 있지는 않은지, 다양한 방식으로 공감하는 시도들이 막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도식적 오월 사적지 복원 문제



얼마 전 복원된 ‘전일빌딩245’를 둘러봤을 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고만고만한 오월 관련 콘텐츠를 전시하기보다는 ‘헬기 총탄 자국’과 관련한 자료 등을 집중 배치해 특화시키고 ‘시민들이 이용하는 복합문화공간’에 더 방점을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는 바로 인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에 오월 콘텐츠가 담길 예정인 데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도 관련 콘텐츠를 만날 수 있어서다.

며칠 전엔 5월 사적지인 505 보안부대 옛터가 5·18역사 공원으로 바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초 젊은 세대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나 청소년 창의공간 등으로 논의됐던 이곳은 면회실 등 일부 건물은 원형 그대로 남기고 역사의 벽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젊은 창작그룹 ‘모이즈’(MOIZ)가 진행했던, 적십자병원의 미래를 꿈꿔 보는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스물세 살의 어떤 젊은이는 병원 외관 전체를 꽃으로 치장해 화원으로 조성한 ‘기억의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1층엔 플라워카페를 만들어 언제나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고, 5·18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박한 장소’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1980년 모습을 재현하지 않고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고, 젊은이들이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예술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50대 시민도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5·18을 기억할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할수록 좋다. 5·18을 ‘1980년’에만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세월이 지나면 망각되고, 내 삶과 무관한 역사는 책속에서나 보는 박제품이 된다. 무조건 5월 유적지를 복원하고, 자칫 도식적인 원형 복원에만 매달려 행여 고문 장면을 재현한 밀랍인형 등으로 오월을 이야기하는 식이라면 그건 시대착오적 아닐까.

오월단체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동안 오월 관련 토론회를 보면 자유롭게 의견이 오가고 치열한 토론 끝에 결과가 도출되기보다는 ‘한쪽 입장’만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옛 전남도청, 상무관, 505보안부대 등의 콘텐츠나 문화전당 ‘미디어 월’ 존치 문제 등에 대해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오월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때론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



5월단체, 시민에게 마이크를



문학평론가 고(故) 황현산의 트윗 글을 모은 책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제목이 모든 걸 이야기해 준다. 농담과 유머까지 장착된, 그의 유연한 사고가 돋보이는 글들을 읽다 보면 “늘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반론을 주의깊게 듣고,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기존 생각을 수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아들의 회고에 동의하게 된다.

이제는 오월단체들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며 그 시절을 함께 넘었던 수많은 광주 시민들과 다음 세대에게 한번쯤 마이크를 넘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멋진 판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김미은 문화부장·편집부국장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