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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의 지혜
2020년 07월 08일(수) 00:00
[김창균 광주예술고 교감]
거문고의 줄을 고르는 기구를 기러기발이라고 한다. 단단한 나무로 기러기의 발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어 거문고 줄 밑에 괴고, 이것을 위아래로 움직여 줄의 소리를 고른다. 그런데 아교풀로 기러기발을 붙여 놓고(膠柱) 거문고를 연주한다면(鼓瑟) 어떻게 될까. 줄은 날씨에 따라서도 당겨졌다 늘어났다 하기에 지금은 음이 맞아도 다음에는 맞지 않을 것이니,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태도를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 한다.

상황에 따른 신속한 대응과 융통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 코로나19가 가세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기성의 흐름을 되돌아 볼 것이 요구되고 있다. ‘20세기 선생님이 21세기의 아이들을 19세기 근대 교육의 산물인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주고슬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학교도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길을 접하며, 비대면 상황의 온라인 수업이나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혼합형 학습) 등의 수업 형태부터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의 학교는 ‘콘택트’(Contact)로 진행되며 교사와 학생의 대면, 학생 간의 상호 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가 있으니, 발명왕 에디슨은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교육용 영사기를 제작하며 “미국 교육에 있어 영사기를 통한 교육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 매체는 있을 수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교실에서 교육용 영화가 발붙일 자리는 없었다. 존 듀이(John Dewey)의 지적처럼 ‘아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직접 해 보며 상호 작용하는 학습을 통해 가장 잘 배운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는 사회적 상호 작용이 긍정적이고 원활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높고, 더 행복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외로움의 위험성은 흡연이나 비만에 비견(比肩)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실질적 접촉은 교육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서도 ‘비대면’(Un-tact) 상황이 불가피하게 현실화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인류 사회는 교육의 역할이 지식 전수 말고도 ‘사회적 관계 맺기’를 통해 책임감을 배우고 정서적으로 성장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음을 잊지 않았다. 산업화 이전의 영국에는 그랜드 투어라고 해서, 지식인들이 귀족 자녀를 동반하여 유럽의 기술 산업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유행이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당시 재무장관의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를 다니며 케네의 중농(자유방임)주의를 접했고, 귀국 후 유명한 ‘국부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이처럼 18세기 이전의 교육은 일대일 또는 토론식 수업을 통해 지식과 사회성을 기르는 전인 교육이 기본이었다.

19세기 이후 산업화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 인력 양성을 위한 지식 전달 중심의 일방 수업이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교실은 작은 사회로서 상호 작용을 통한 배움을 잠재적 교육 과정으로 이어왔으며, 현실에 대한 반성 속에서 교육을 통한 사회성과 인성 회복 방안에 대해 꾸준히 성찰해 왔다. 그러하기에 언택트 상황에 맞춰 이른바 ‘1타 강사’ 중심의 인터넷 강의나 원격 수업 형식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겠지만, 학생들이 상호 협력과 도전 속에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 했으니, 음이 틀어지면 기러기발을 옮길 수도 있겠지만 순간을 모면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줄이 느슨해지고 음이 맞지 않을 때는 본질적으로 거문고 줄을 바꿔 매야 한다. 팬데믹 상황이 올지라도 ‘BC’(Before Corona) 시대의 선발을 위한 경쟁이 여전한 학교 현장에서의 근본적 혁신 과제는 학생들이 원활한 사회 작용 속에서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고, 그 안에서 비롯되는 개별성과 창의성을 ‘AC’(After Corona) 시대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