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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의 추락
2020년 07월 03일(금) 00:00
한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pirates: 해적)의 경기를 즐겨 본 적이 있다. 광주 화정초-무등중-광주일고를 나온 강정호가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해적 구단’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만큼 강팀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야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강정호가 있었다.

유격수와 3루수 자리를 오가며 파이팅 넘치는 수비를 보인 그는 힘을 앞세운 공격력으로 홈구장 PNC 파크의 4번 타자를 맡았다. 2015년에 입단해 세 시즌 동안 46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홈런보다 짜릿한 타격도 많이 보여 주었다. 특히 입단 첫해 채프먼의 100마일(161km/h)짜리 패스트볼을 당겨 쳐서 담장을 직접 맞추던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야구 인생의 정점에 선 강정호를 무너뜨린 건 상대 투수가 아닌 자신이었고, 공이 아닌 술이었다. 2016년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두 번의 음주운전 사고까지 추가로 알려지더니, 결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야구선수로서의 생활도 사실상 ‘삼진아웃’을 당한 것이다.

그동안 야구계에서는 불법을 저질러 거센 비난을 받고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특권보다 공정이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강정호는 음주 운전 사고 이후 피츠버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국내 프로야구 복귀도 결국 좌절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프로야구 상황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다.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면서 각 구단들은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고, 선수들 또한 홈런을 치거나 끝내기 안타를 쳐도 팬들의 박수와 함성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모두의 노력 끝에 관중 입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 KBO 역시 팬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강정호의 프로야구 복귀 꿈은 여론 악화로 일장춘몽이 되었다. 광주 출신 한 야구 천재의 몰락을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