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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유산 대나무
2020년 07월 01일(수) 00:00
남녘의 대나무 숲은 어디든지 마을과 잘 어우러져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 뒤꼍 역시 온통 대밭이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대밭을 담양에서 볼 수 있었다. 맹종죽(孟宗竹)이었다. 잔가지 없이 매끈하게 쭉쭉 뻗은 몸체와 허벅지만 한 굵기가 인상적이었다. 비탈이 아닌 평지에 자리한 대밭에는 대나무 외에도 ‘망태버섯’과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라고 있었다.

예로부터 한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대나무와 한평생을 같이했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탯줄을 대나무 칼로 잘랐다. 전통 혼례상에는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대나무 잎을 꽂았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지팡이(竹杖)를 짚었다. 대나무는 생활의 반려자이기도 했다. 소쿠리와 채반 등 숱한 생활용품이 그것이다. 여름이면 죽부인과 합죽선으로 무더위를 물리치기도 했다.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와 세한삼우(歲寒三友: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 그리고 십장생(十長生) 가운데 하나인 대나무는 많은 문인화와 문학 작품 속에서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쓰였다. 요즘 검찰 CI에도 ‘늘 푸르고’ ‘대쪽같은’ 대나무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 필라멘트나 찰리 채플린의 지팡이가 대나무 소재라는 것도 이채롭다.

‘대나무의 고장’으로 불린 담양은 죽제품의 일번지였다. 일제강점기에 혼수 필수품이었던 담양산 참빗은 멀리 만주까지도 팔려 나갔다. 1980년대만 해도 담양읍 담주리 천변에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죽물시장이 섰다. 1990년대 들어 담양 대숲은 새로운 생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는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휴대전화 CF의 배경 또한 담양 금성면 대숲이었다. 최근 대나무는 건강식품과 건축자재 등 바이오 신산업 소재로 진화하고 있다. 대숲 역시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담양 대나무밭 농업’을 세계 중요 농업유산으로 지정했다. 대나무 품목으로는 세계 처음이다. 이번 등재를 계기로 ‘죽향’(竹鄕) 담양이 새로운 대나무 문화 산업을 창출하기를 기대해 본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