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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붙잡는대로 대검으로 찌르고 총대로 신체 박살 냈다”
[5·18 당시 상황 담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일기 보니]
수배 중 은신처서 140매 작성
환각제 먹인 뒤 공수부대원 투입
사람 쓰러지면 연막탄 뿌려 은폐
충격적인 광주 참상 상세히 표현
2020년 05월 19일(화) 00:00
“18일 오후, M16 현대무기로 중무장한 군인들은 학생들을 붙잡는 대로 총에 꽂은 대검으로 찌르거나 총대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건 치고 받으며 박살을 냈다”

5·18 당시 수배 중이었던 박석무(78·당시 대동고 교사)다산연구소 이사장이 1980년 6월 14∼15일 계엄군을 피해 도망간 서울 은신처에서 작성한 일기는 5월 당시 광주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박 이사장이 원고지 뒷면에 140매 분량으로 작성한 ‘5·18 광주의거-시민투쟁의 배경과 전개과정’은 각 일자별 항쟁 상황과 발생 원인·의의, 교훈 등을 8개 장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이 일기는 당시 광주상황을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5장 ‘광주의거의 경위’에는 계엄군의 진압과정을, 6장 ‘해방된 광주’에서는 22∼26일 평화적인 광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5월18일 계엄사측이 공수부대원들에게 환각제를 섞인 소주를 먹인 뒤 광주시내에 투입시켜 학생 살육작전에 돌입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최초 발포 시점도 5월19일 계림동 앞이라고 기록돼있다.

계엄군은 사람이 쓰러지면 즉시 연막탄을 뿌려 상황을 은폐한 뒤 차로 싣고 갔고, 시체에는 페인트를 칠해 시민들이 확인을 못 하도록 했다는 등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상세히 표현해 놨다.

박 이사장은 현장이나 계엄군의 만행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사들은 카메라를 빼앗기거나 붙들려 폭행을 당했고, 사진기자들도 맥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해 적었다.

22일 이후 수습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자발적 치안 유지, 거리 청소가 이어졌으며 경찰서 등 관공서도 시민군들에 의해 안정적으로 지켜졌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기록은 5월 광주의 참상과 그 배경까지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 이 기록 초본은 지난해 6월 5·18기념재단에 기증돼 5·18 진상규명 및 왜곡 처벌 근거와 연구·교육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