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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흔적 ‘정읍 화호리마을’ 학술조사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내년까지
건축·인문환경 등 다방면 조사
2020년 04월 08일(수) 18:30
일제강점기에 화호리마을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던 일본인 농장주 다우에가 살던 가옥이다. 해방 후 화호우체국으로 사용했으나 현재 멸실됐다. <전북지방우정청 제공>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의 상징인 정읍 신태인읍 화호리마을에 대한 학술조사가 진행된다.

8일 정읍시에 따르면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이달부터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과 관련한 건축과 인문환경 학술조사에 착수한다. 첫 번째 대상 지역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정읍시 화호리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미곡 수탈이 이뤄진 화호리마을은 정읍·김제·부안 중심지로 이동하기 편한 교통 요지다. 주변에 너른 평야가 있고 물산이 풍부해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이 이주, 대규모 농장을 세웠다. 이 곳에서 수확한 쌀은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유출됐다.

일본인 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다우에 다로(田植太郞), 니시무라 다모쓰(西村保)와 농촌 보건위생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의 가옥과 창고, 당시 사용하던 사무소, 병원 등이 남아있다.

완주문화재연구소는 화호리 근대건축물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는 점을 고려해 전북도, 정읍시와 함께 건축·조경·농업·인문·민속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학술조사를 진행한다.

연구소는 2년 간의 조사를 마치면 결과물을 연구보고서로 공개해 전북지역 농촌수탈사에 대한 교육과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화호리 마을은 전북 지역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 관련 건축·인문환경 조사 첫 대상지로, 성과가 좋으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려고 한다”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를 등록하거나 지정하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읍=박기섭 기자·전북취재본부장 parkk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