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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2세 사업가·미술 컬렉터 동강 하정웅
미술품 1만여점 기증 ‘메세나 정신’ 실천
“도쿄서 첫 구입 전화황 작 ‘미륵보살’은 내 컬렉션의 시작이자 원형”
아키타현 미술관 꿈 백지화되자 광주시립미술관 등에 기증
‘하정웅 컬렉션’ 작품 등 자료사진·영상물 상시 전시
2020년 03월 10일(화) 00:00
광주시립미술관에 2603점의 작품을 기증한 동강 하정웅.
“…그와의 만남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나는 ‘기도’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 불멸의 화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시절의 꿈대신, 이제는 다른 꿈을 품게 되었다. 감춰져 있는 명작들을 되살려내는 컬렉터의 길이다.”

동강(東江) 하정웅(81)은 지난 2014년 출간한 자전 에세이집 ‘날마다 한걸음’에서 미술 컬렉터로 거듭나게 되는 한 작가와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한다. 1960년대 중반, 자수성가한 청년사업가 하정웅은 도쿄 신주쿠(新宿) 한 백화점내 화랑에서 운명적인 작품과 마주한다. 재일한국인 1세 화가인 전화황(1909~1996)의 ‘미륵보살’이었다. 그는 전화황에 대해 ‘내 컬렉션의 시작이자 원형’이라고 묘사한다.

1939년 영암출신 재일 이주노동자의 장남으로 일본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에서 태어난 그는 아키타(秋田)현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 화가를 꿈꾸었지만 가난으로 꿈을 접었다. 가전판매 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첫 구입한 ‘미륵보살’을 시작으로 미술품 컬렉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5살 때였다. 자연스럽게 ‘가슴을 울리고, 영혼을 두드리는’ 재일한국인 1세(곽인식·송영옥·전화황)와 재일한국인 2세(곽덕준·문승근) 작가들의 작품을 모으며 후원했다. 이어 한국 작가작품, 일본 작가 작품, 전세계 작가작품으로 나아갔다.

“내가 재일한국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작품들이 내 분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 삶을 포함해서, 재일한국인 전체의 역사가 투영된 거대한 자화상이기 때문이다.”(‘날마다 한걸음’중)

그는 자신의 컬렉션 특징으로 ▲‘기록’의 유산 ▲‘기도’의 미술 ▲‘행복’의 확장 ▲‘기쁨’의 공유를 꼽는다. 그는 미술품을 컬렉션하면서 아키타현 다자와 호수 인근에 ‘기도의 미술관’을 세우겠다는 꿈을 품었다. 건물설계는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에게 의뢰하고, 미술관 현판글씨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때 강제징용 등 문제로 한일관계가 냉각되자 일본 아키타현 센보쿠(仙北) 시는 미술관 설립을 백지화시켜버렸다. 대신 그는 광주 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영암 군립하미술관, 조선대미술관, 국립 고궁박물관, 부산 시립미술관, 대전 시립미술관, 포항 시립미술관 등지에 평생 수집해온 1만여 점의 작품을 무상 기증했다.

광주시는 아무런 조건없이 실천해온 그의 ‘메세나(Mecenat) 정신’을 높이 평가해 2001년 광주 시립미술관 명예관장과 광주 명예시민으로 위촉했고, 2012년 중외공원~비엔날레관 내부도로명을 ‘하정웅로’라고 이름 붙였다. 또 조선대는 2003년 명예 미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 미술관’
광주 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 입구에는 11개의 가마솥을 쌓은 그의 작품 ‘솥탑’(2016년 작)이 설치돼있다. 2층에서는 ‘하정웅 컬렉션’ 작품과 함께 그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자료사진과 영상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기증자 하정웅의 삶과 철학’ 영상물에서 힘주어 말한다.

“두 번 다시 그런 전쟁이 없고, 불행한 시대가 없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내 일생의 철학으로 되고 정신으로 되어서 약한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도 철학으로서 나타나고 있고, 작품안의 행복을 찾습니다. 평화를 찾습니다. 불행한 시대를 그림 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