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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호남의병사 밝힐 문집 발굴
갈옹 문홍개 장군 친필 서책 추정…당시 가문 10여명 의병 참여
2020년 02월 20일(목) 00:00
문위세-문홍개 가계도
3·1절 101주년을 앞두고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만세운동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의병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가문의 문집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기사 17면>

이 문집은 임란 당시 장흥·보성 지역에서 가문 전체가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좌의병 결성에 기여한 갈옹(葛翁) 문홍개(1571~1638) 장군 친필 서책으로 추정되며, 향후 호남 의병사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특히, 문위세-문홍개 가(家)는 10여 명의 가족이 의병으로 나설 만큼 충의가 대단했다. 이후 가문의 의병정신은 일제강점기 보성향교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문창의, 독립운동을 펼쳤던 문남일 등으로 이어진다.

이번 고문서를 처음 발굴한 이는 광주에서 고문서 수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용선 씨다. 손 씨는 “25년 전 광주고미술 서점에서 옛 문집을 구입했는데 당시는 성리학자 서책으로만 알았다”며 “최근 호남의병사를 연구하는 노기욱 박사를 통해 갈옹 문홍개 문집이 확실하다는 견해를 들었다”고 밝혔다.

400여년으로 추정되는 문집은 실제 진본으로 추정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글씨의 처음과 끝의 먹물 농도가 동일하며 당시로서는 일반 서민이 사용할 수 없는 장지로 서책이 구성돼 있다. 또한 노란색, 빨간색, 청색, 흰색 등 컬러를 사용한데다 지질이 우수하며 오랜 세월의 흔적이 겉표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직접 문집을 본 노기욱 호남의병연구소 소장은 “최근 보성군에서 편찬한 의병사에 문홍개 장군이 언급돼 있는데 이번 문집이 바로 친필로 추정되는 옛 서첩이 확실하다”며 “이 문집을 매개로 전남 의병사를 총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홍개 의병장은 고려시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10대손이다. 1571년(선조 4) 1월 29일 장흥부 신당촌에서 풍암(楓菴) 문위세의 넷째 아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갈두리로 옮겨 거주했기에 호를 갈옹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갈옹의 네 형제는 모두 임란이 발발하자 의병에 참전해 임진 선무 원종공신에 눅훈됐다.

특히 문홍개 장군은 임란 최초 육지 전투인 이치대첩에서도 권율장군과 같이 참전해 혁혁한 전승을 거뒀으며 1597년 정유재란에도 참전해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

호남의병 관련 책을 집필하고 있는 양성현 작가는 “호남의병들은 나라를 구하자는 일념으로 너도나도 의병에 출장했다”며 “문위세-문홍개 가문은 모두 10명의 가족이 의병에 나선 충의의 가문”이라고 말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