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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그린 시대의 명화,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신화의 비밀, 명화의 비밀
제라르 드니조 지음, 배유선 옮김
2020년 01월 17일(금) 00:00
배로네세 ‘레다와 백조’
티치아노 베셀리오 ‘시시포스’


예로부터 구전 서사는 문화와 지혜의 보고였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후세대에게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했다. 이야기는 청자에 따라 다양하게 첨언되거나 윤색됨으로써 새로운 서사를 잉태한다.

전승되는 이야기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자산은 신화다.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신과 인간, 자연이라는 세 범주가 풍성하게 교직된 터라 드라마틱하면서도 다채롭다.

그 신화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북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인도, 이집트, 아프리카 등에도 풍성한 신화가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 로마신화가 끊임없이 후세대에게 영감과 지혜와 예술의 상상력을 주기 때문이다.

일찍이 ‘아서왕 이야기’의 저자 토마스 볼핀치는 “신화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과 문학의 기준이다”고 정의했다. 달리 말해 신화는 서구 ‘인문학의 열쇠’라는 의미다. 신화는 시인과 화가 뿐 아니라 인문학 분야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원천소스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당대의 천재들은 왜 반복해서 그리스 신화를 그렸을까? 예술사학자이자 문화유산 전문가인 제라르 드니조가 펴낸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신화의 비밀, 명화의 비밀’은 시대와 신화가 만나 펼쳐진 화폭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책에는 우주 창조부터 고대 서사시, 태초의 신들부터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영웅들까지 아우른다. 또한 시대의 걸작을 신화와 예술이라는 두 키워드로 분석한다. 저자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명화를 그린 화가의 의도와 문명의 접점을 만날 수 있다.

귀스타프 모로의 작품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은 굴하지 않는다”, “강인한 구원자의 초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우스를 속여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발가벗겨진 채 카우카수스 산 절벽에 묶여진다. 그에게 가해진 형벌은 낮이면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 밤이면 간이 돋아나는 것이었다. 가혹한 고통에도 프로메테우스는 물러서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저항한다.

귀스타프 모로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결한 맹금류는 대머리독수리로 묘사돼 있다. 천하의 맹금류 왕인 독수리가 시체를 쪼아 먹는 모습은 신들의 비열함을 비웃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프로메테우스 발 아래에는 죽은 독수리가 놓여 있다.

“전경에 놓인 독수리 시체는 프로메테우스야말로 최후의 승자라고 똑똑히 말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이고 그를 쪼는 독수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헬라클레스가 그를 해방시키러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른 새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베로네세의 걸작으로 꼽히는 ‘레다와 백조’는 자유분방한 삶을 “폭발적인 색채미”로 표현했다. 이 신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백조의 모습으로 변한 제우스가 레다와 사랑을 나누었고, 이후 레다의 남편 틴다레오스도 그날 밤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 이후 레다는 제우스에게서 폴리데우케스와 헬레네를 낳았고, 남편에게서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타스토르를 낳았다.

이 그림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당시 베네치아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허락했다고 볼 수 있다. 베로네세는 르네상스 작가지만 이 그림을 완성할 즈음에는 유럽 전역에 바로크 열풍이 불었다.

“신성한 혼인관계를 저버리고 이교의 신 제우스와 육욕에 몰입하는 묘사를 보나 자유분방한 삶의 즐거움을 표현한 폭발적인 색채미로 보나 사건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영감으로 보나 베네치아 미술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이다. 이후 한동안 잠잠해질 고대의 신들이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듯하다.”

티치아노 베셀리오의 ‘시시포스’는 바위를 지고 산을 오르는 사내의 모습을 그렸다. 오늘날에는 운명을 거부하는 현대적 영웅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사실은 영악한 행위로 형벌을 받는 이의 모습을 상징한다.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시포스는 신들 앞에 교만하고 거짓말을 일삼다 하계로 떨어진다. 큰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렸다가 반대로 떨어뜨리는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저자는 그림의 의미는 “인간 조건의 부조리함이 아니다”며 “함부로 권력에 대항하면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책은 명화가 주는 경이로움보다 점차 신화를 읽는 눈이 점차 바뀌어왔음을 보여준다. 걸작이 신화의 보조 자료가 아닌 풍요롭고 지적인 삶을 위한 흥미로운 그림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의길·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