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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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시인
2019년 12월 12일(목) 04:50
지난 9월 조이 하조(Joy Harjo)라고 하는 미국의 시인이 원주민 출신 최초 계관시인(Poet Laureate of the US)으로 선정되었다.

선정 배경은 조이 하조가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주권 및 인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자 예술가로서 40여 년간 활발히 활동해온 데 있다. 하조는 오클라호마주 머스코기/크릭(Muskogee/Creek) 부족에서 태어나 억압과 차별, 가난을 겪으며 성장하다 1970년 뉴멕시코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뉴멕시코대학은 연방정부의 식민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원주민 인권 운동의 메카였다. 시인은 여기에 자연스럽게 참여하여 최초의 원주민 저항 신문인 ‘콜럼버스 이전의 미국인들’(Americans Before Columbus)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첫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1973년이었다.

한데 조이 하조의 행적은 우리의 김남주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김남주 시인은 유신 독재에 항거하여 오랜 옥고를 치렀고 자유, 민주, 인권, 정의에 관한 많은 시를 남겼다.

지난 5월 전남대학교에 개관한 김남주홀에 보관된 시들은 시인이 옥중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시를 썼는지 잘 보여 준다. 흥미롭게도 김남주 시인은 조이 하조와 비슷한 시기인 1972년에 최초의 반유신 저항신문 ‘함성’을 발행했고,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성별, 인종, 문화,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두 시인은 나란히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조이 하조와 김남주가 남긴 ‘저항’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정신인가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 및 정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인식이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조이 하조의 계관시인 선정은 미국 문학계만큼은 시인이 대표하는 원주민문학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달라진 원주민의 정치적 위상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 역사와 맥을 같이한 원주민에 대한 사회 정치 경제적 차별과 고립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원주민 주권은 연방정부가 1924년 시민권을 수여하고 각 부족의 자치를 인정한 이 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다.

각 부족의 자치권은 미합중국이라는 국가 권력에 종속된 상태로만 유효한 까닭에 원주민은 여전히 (반)식민지 상태인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억압, 인종차별적 정책과 규제들, 그리고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득세는 이런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다.

김남주 시인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산은 어떠한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지난 40년간 일부 세력에 의해 꾸준히 폄훼, 왜곡, 비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런 경향은 5·18 특별법 제정과 역사적 재평가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이 역사적 진실과 가치를 호도하는 가짜뉴스가 더 증가하는 추세다.

법적·제도적 장치의 개선과 근본적 인식의 변화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하며, 이를 좁히는 일은 매우 지난(至難)한 일임을 절감케 하는 것이다. 1964년 미국의 인권법(Civil Rights Acts)을 통한 ‘표면적 인종 차별 금지’(tokenism)가 소수 인종에 대한 백인 주류 사회의 인식과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까지 가져오지는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분명 모순적인 시대를 통과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항해야 한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은 보수·진보, 좌·우, 동·서, 과거·현재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가치가 아닌가? 시대가 모순될수록 이 사실은 더욱 명료해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의 봄을 목전에 둔 2019년 겨울, 두 시인 김남주와 조이 하조가 남긴 유산을 되새기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항’은 현재진행형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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