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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특정한 말 하나 가슴에 품고 살지요”
광주일곡도서관서 ‘삶과 글쓰기’ 주제 강연 손홍규 작가
‘아짐찮다’는 말이 주는 울림 여전
소설은 세상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
정읍 출신…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
2019년 12월 09일(월) 04:50
최근 광주 일곡도서관에서 손홍규 작가가 강연을 하는 모습. <무등문예창작연구회 제공>
“작가는 누구나 특정한 말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지요. 한 단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삶이며, 우리 인생은 어쩌면 끝없이 사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구요.”

손홍규 작가는 소설가의 삶과 소설가의 언어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특정한 그 말은 무엇일까. 취재를 하기 전 기자는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가 꺼낸 말은 바로 ‘아짐찮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 전라도 방언이다.

최근 광주일곡도서관에서 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손홍규 작가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무등문예창작연구회와 생오지 창작촌 동인 글한량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손 작가는 ‘사연을 쌓는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그는 소설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일화(사연)들을 공개하며 독자들과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강연이 끝나고 가진 손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설을 왜 쓰는지, 창작에 입문하게 된 계기, 향후 작품 계획 등을 이야기했다.

정읍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전국대학생문학연합 행사가 있을 때 곧잘 광주에 내려갔다”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손 작가는 초등, 중등은 정읍에서 보내고 고등학교를 전주로 진학했다.

선한 인상에 조근조근한 말씨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작가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답게 그의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편의 서사로 다가왔다. 그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아니 평생 창작의 길을 가겠노라 마음먹게 한 단어는 바로 ‘아짐찮다’.

“언젠가 도보여행를 하다가 버스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장흥에서 강진으로 가는 버스였어요. 어느 정류장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버스를 탔는데, 저쪽 마을 어귀에서 허리가 구분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사한테 조금 기다려 달라는 신호였지요. 버스 가까이 왔을 때 보니까 팔을 계속 젓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더라구요. 꽤 긴 시간이 흘러 다들 짜증을 낼 만도 한데 누구 하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버스에 오른 할머니가 차에 오르자 “기다려주서 아짐찮소”라는 말을 했다. 기꺼이 차를 기다려 준 데 대한 답례로 할머니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는 의미의 말을 건넸다.

손 작가는 그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마다 특정한 말에는 나름의 삶과 사연이 담겨 있다고. 그 말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더라도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예감이 오늘의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은 일종의 세상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와 인연을 작품으로 형상화 하는 것이 창작의 기본 토대”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실패한 상실감, 과거의 어둠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중편이라는 양식에 주목해 장편이 추구하는 서사의 시대성과 역사성, 단편이 강조하는 상황성을 절묘하게 조합했다”고 평했다.

손 작가는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에 실린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소설의 가치, 미학과도 연계된 말이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중략) 나는 타인들 역시 무엇을 잃었는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손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 팔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이 보였고 다리가 없거나 허리가 없거나 머리가 없는 사람도 보게 되었다. 누구나 무언가 하나씩은 잃고 사는 것 같았다.”

손 작가는 소설이 당장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큰 기여나 역할은 할 수 없지만 외롭거나 자신만의 시간에 빠져 있을 때는 소설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 때문에 작가는 항상 글을 써야 작가라고 부연했다.

“소설을 생각하고 쓰고 있으면 현실적이고 번잡한 생각들이 물러납니다. 그러나 뭔가 잡다한 생각을 하면 작가는 ‘타락하기’ 마련이죠. 견디고 사는 것 그것이 창작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이 지향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어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날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2002년 2월 대학(동국대) 졸업식 전날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음날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셨고, 등단했다고 했더니 “축하한다. 월급은 얼마냐”고 물었다며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소설을 쓰는 이유가 각자 있을 텐데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그리고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쪽이 훨씬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손 작가는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장편 ‘귀신의 시대’, ‘이슬람 정육점’, 소설집 ‘사람의 신화’, ‘그 남자의 가출’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