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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라도의魂<20> <제3부> 전라도, 문화예술 꽃피우다 ③ 판소리와 진도아리랑
소리에 한이 더해져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하다
한국 전통문화 ‘판소리’
조선후기 발달 남도향토음악으로
유네스코 등재…동·서편제 대표적
국창 임방울, 판소리 명맥 지켜
강강술래·남도들노래 등 진도민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
2019년 10월 29일(화) 04:50
민중과 함께하며 위안을 줬던 판소리 가객 국창 임방울. <(사)임방울국악진흥회>
진도 남도들노래. <진도군>




진도아리랑 체험관




진도아리랑 체험관




고향을 찾은 송가인·조유아가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싸구려 허허허 굵은 엿이 왔네 정말 싸다 반월엿 강원도 금강산 자자자 일만이천봉…”

고수의 장단에 맞춘 ‘진도 엿타령’ 노랫소리가 진도 의신면 의신중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원조 진도 엿타령으로 유명세를 알린 할머니와 전남무형문화재 제40호 조도닻배놀이 예능보유자인 부친 조오환씨에 이어 3대째 소리를 이어오고 있는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조유아의 소리다.

잠시 후 조유아와 함께 그녀의 절친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함께 나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진도 아리랑’을 들려준다. 송가인은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국악을 전공한 내로라 하는 소리꾼이다. 젊은 소리꾼들이 부르는 진도아리랑이 귀에 착착 감긴다.

추석 명절을 맞아 의신면 노래자랑이 열린 의신중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사이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의 소리가 꽤 들려온다. 언뜻 듣기에도 ‘소리하는 사람들인가’ 할 정도로 실력들이 만만치 않다. “진도에서는 그림 자랑하지 말고 글씨 자랑하지 말고 노래(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 많은 우리의 소리 ‘판소리’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야기할 때 ‘판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판소리는 탈춤과 함께 조선 후기 민중문화의 중요한 성과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지난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에 우리의 소리가 알려지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를 뜻하는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판소리’는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춰 소리(창)와 이야기(아니리), 몸짓(너름새)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한다. 한(恨)과 흥(興)이 적절히 섞여 있어 듣는 이들의 어깨춤까지 들썩이게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이보다 구슬픈 노래가 없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중에서도 특히 남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악으로 불린다. 1978년 조동일과 김흥규가 펴낸 ‘판소리의 이해’(창작과 비평사)를 들여다 보면 ‘판소리는 18세기초 조선 후기에 생겼다. 일반적으로 남도, 즉 전라도 지방에서 생겼고 발전했다… 공연이 하류층의 생경(生硬)과 조잡으로 출발해 다듬어진다…’고 표현된다.

남도를 중심으로 불려진 판소리는 서민들의 삶을 그려냈다. 애환을 노래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러면서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이기도 했다.

판소리는 소리의 특징과 지역에 따라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전라도 동북지역은 동편제, 전라도 서남지역은 서편제다. 경기도·충청도 쪽은 중고제로 구별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 덕에 많이 알려진 서편제는 광주와 나주, 담양, 화순, 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남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를 표준으로 삼는다. 서편제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후원에 힘입어 전국적인 유파로 발전했으며 박기채, 김준섭, 박춘성,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 수많은 명창 명인들을 배출했다.

보성에 가면 ‘서편제 보성소리전수관’이 있는데 1998년 판소리계의 성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전수관 완공 후 매년 서편제 보성소리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동편제는 전북 남원, 순창, 전남 곡성, 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다. ‘가왕’으로 불린 송흥록의 소리를 표준으로 삼는다. 구례에 가면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이 자리하고, 매년 가을 동편제 소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판소리 명창에는 국창 임방울(1904~1961) 선생이 있다. 20세기에 활동한 임방울은 화려한 무대보다 시골장터나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한을 노래했다. 그가 활약했던 시기는 민족사적으로나 판소리사적으로 가장 어둡고 쓰라린 시기였다. 서민의 사랑과 지지에 의존해 판소리 외길을 걸으며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면서 판소리의 명맥을 지켜왔기에 ‘판소리’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

판소리 명창 채맹인과 채두인, 박동준, 신치선, 양상식, 허희, 최귀선, 신영희 등을 배출한 진도는 민요의 고장이기도 하다.

고수의 장구 반주에 맞춰 독창으로 부르는게 판소리로 정의된다면 민요는 범위가 넓어진다. 독창 뿐만 아니라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부르거나 반주 없이 부르기도 하고 가락악기를 반주로 부르기도 한다.

민요 역시 전라도 지방의 민요가 대표적이다. ‘남도민요’라 부르는 음악이다. 남도 민요는 대부분 육자배기풍으로 이뤄져 있다. 6박의 진양조장단에 맞춰 부르는 것으로 전라도에서는 논매기 할 때나 나무꾼들이 불렀다. 평평하게 길게 뻗는 목을 중심으로 밑에서 굵게 떨거나 흘러내리거나 굴리는 식으로 맺힌 한을 풀어나가듯 소리를 낸다.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다시래기, 강강술래, 씻김굿, 남도들노래가 진도민요에 포함된다. 들노래는 논일하며 부르는 모뜨는 소리, 모 심을 때 부르는 상사소리, 논김 맬 때 부르는 절로소리 등 일하는 과정에 따라 각각의 노래가 있다. 지산면의 논일 노래인 ‘남도들노래’가 대표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돼 있다.

진도 민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진도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은 진도지방에서 구전되는 민요로, 흥겨운 육자배기 가락에 판소리의 구성진 목청이 어우러진 민요다. 우리 선조들은 들녘에서 일을 하다 지친 몸에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진도아리랑을 불렀고,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도, 나물을 뜯다가도 진도아리랑을 노래했다.

진도아리랑은 남도 특유의 음색이 가미돼 ‘입술에 쩍쩍 달라붙고 휘휘 갱기는 소리’가 특징이다. 기존의 아리랑이 갖는 사설의 단조로움과 가락의 애조성을 넘어 동적이면서 흥취가 있는데 이는 도서 사람들이 갖는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가사에는 님을 그리는 애끓는 마음과 원망을 해학적으로 엮은 내용이 많다. 노래를 부르는 이가 즉흥적으로 개사를 하기도 한다.

‘저그 가는 저 큰애기 어푸러져라 일쌔나 준대끼 보두마나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진도아리랑을 들으며 자란 강예심(69)씨가 진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아리랑 소리에 흥이 절로 난다.

196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전라도 바닷가와 도서 지방에 널리 분포하던 노래와 무용이 종합된 민속놀이다. 고대 농경시대 때 공동 축제에서 부르던 노래와 춤의 놀이형태가 이어져 내려왔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적을 속이기 위해 강강술래를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

긴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개고리타령, 고사리 꺾자, 청어 엮자, 덕석몰기, 덕석풀기, 지와밟기(기와밟기), 따비질, 손치기, 바늘귀뀌기, 대문열기, 쥔쥐새끼놀이 등 박자에 맞춰 다양하게 불려지며 매 소절에 ‘강강술래’로 받는다. 강강술래 악곡 역시 남도 소리의 전형인 육자배기로 이뤄지지만 소리꾼이 상황에 따라 느리게 또는 빠르게 부르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진도=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