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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영 기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하며
2019년 09월 16일(월) 18:55
 내가 태어난 곳은 빛고을이 아니다. 그렇지만 토박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오랫동안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곳에서 다녔고, 공부한답시고 잠시 서울에 간 적은 있으나 지금도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한 사람을 만나 연애와 결혼도 여기서 하고, 내 아이들의 고향도 광주이다. 내게 광주는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곳이다.
직업병 탓인지 자연스레 광주의 거리와 역사를 뒤적여 본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요즘 광주가 이래저래 무척 바쁘다. 바쁜 게 좋은 일이겠으나 솔직히 우려스럽고 걱정된다. 바빠진 광주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보이는데 무척 걱정된다.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어릴 적 살던 곳을 버스 안에서 보며 지나왔다. 어릴 때부터 한동안 살던 곳은 광주천이 흐르는 광천동으로, 무등경기장 건너편이다. 여름 날 저녁마다 수양버들 아래 놓인 어느 집 평상에 앉아 소리를 들으면 그날의 해태 타이거즈 경기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어린 아이 키보다 훨씬 자라버린 잡풀을 동네 사람들이 함께 베기도 했다. 그 위에서 아이들은 축구와 야구, 천연 눈썰매, 연날리기, 쥐불놀이 등을 하며 자랐다.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가을 소풍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이 1979년 10월 27일이었다. 결국 선생님들의 회의 끝에 소풍을 가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그 많은 장소 중에서 고른 곳이 집 앞 다리 밑이었다. 그곳으로 소풍 가서 김밥과 사이다, 과자를 까먹는 것으로 소풍날을 마쳤다. 어린 기억으로도 허탈했다.
다음해 5월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초등학생에게 학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었다. 난데없이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부르며 버스 타고 다녔다. 어느 날인가 전남도청 앞에 다녀온 옆집 아주머니는 이웃들에게 앞으로 방위 성금을 내지 말자고 선동하셨다. 5·18항쟁의 마지막 날에는 집의 제일 안쪽 방에 우리 가족과 고모네 식구들이 모여 솜이불을 두르고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웠다. 총소리만 들린 게 아니라 우리 집 담벼락에도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날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날이 밝아 왔다. 그리고 집 부근의 다리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며칠 뒤 다시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잔인했던 5월은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던 그 공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잡풀 우거진 천변은 어느새 잘 닦인 공간으로 변했다. 40년이 지난 단독 주택을 남겨둘 필요야 없었고 잡풀은 걷어내야 하겠지만, 어릴 적 지나온 흔적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며칠 전 그 앞을 버스 타고 지나며 들었던 생각이 광주의 시가지에 미치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 들어 광주의 하늘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공기도 그만큼 안 좋아졌다는 걸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행병처럼 빈 공간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창의성을 말하기는 민망할 만큼 그 웅장함에 압도된다. 내부 시설이야 첨단 기술이 들어가 넘치도록 편리하겠으나 딱 거기까지이다. 사람들이 들어 있는 공간임에도 사람들을 압도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비친다. 그 건물과 둘러싼 공간에 담긴 어제가 사라진 채로 커다란 벽이 세워진 느낌이다. 우뚝 솟은 건물들이 광주의 하늘, 조망을 가리고 있다. 예전에는 보였어야 할 하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회색빛 건물이 대신한다. 광주가 어느새 ‘개발 도시’가 됐다는 어느 분의 한탄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더불어 광주의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 빛고을 하면 양림동 근대 역사 마을과 5·18민주화운동만 떠오른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좋은 일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건물을 높게 짓고 많은 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듯싶다. 개발의 논리 속에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사라진 게 낡은 건물과 공간뿐일까?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예사롭지도 마냥 기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