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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았다’ 속속 드러나는 오월의 진실
2019년 05월 15일(수) 00:00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용기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오월의 진실과 참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광주일보가 어제 단독 보도한, 당시 효천역 인근에서 자행된 진압군의 민간 버스에 대한 무차별 총격도 그 중 하나다.

당시 나주시 남평 호혜원에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63) 씨는 최근 광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21일 자전거를 타고 광주로 오던 중 효천역 인근에 수많은 총탄 흔적과 핏자국이 있는 버스 세 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민간 버스가 옆으로 넘어져 있고 헤드램프 위에는 붉은 글씨로 ‘계엄’이라고 적힌 모습 등을 촬영한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항쟁 기간 5월 26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 통역과 상무관 시신 수습 등을 도운 그는 헬기 사격에 대해서도 “상무관에서 활동하며 손주를 잃은 할머니 등 여러 시민으로부터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5·18 당시 상당수의 사망자가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 처리됐다는 증언도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주한 미군 정보 요원이었던 김용장 씨는 그제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매장한 시신을 재발굴해 일부는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505 보안부대 특명부장을 지낸 허장환 씨도 “보안부대에서 지문 채취를 마친 희생자 사체들은 대부분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김용장 씨는 특히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인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이 K57(제1 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대장 등과 회의를 했고, 당시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증언한 계엄군의 민간 버스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민간인 희생자 시신의 무단 소각은 새롭게 확인된 사실로, 당시 신군부의 잔혹성과 진실 은폐를 위한 치밀함을 보여 준다.

전두환의 집단 발포 전 광주 회의 참석 증언도 발포 명령자 규명을 위한 귀중한 단서다. 국회는 5·18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구성되지 않고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하루빨리 출범시켜 이들 증언에 대한 철저한 규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