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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미디어아트 도시를 꿈꾸다<8>독일 칼스루헤 ZKM (상)
100년 된 탄약공장 예술 입혔더니 年 22만명 ‘문전성시’
고전예술+디지털 ‘미디어 아트센터’변신
2018년 10월 23일(화) 00:00
탄약공장, 제철소로 사용된 후 20년 이상 버려졌던 공간에 둥지를 튼 독일 칼스루헤 ZKM은 다채로운 전시와 연구, 개발 등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본산이다. 역사가 담긴 공장 건물과 유리로 외곽을 장식한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룬 ZKM 야외에는 다양한 미술작품도 전시돼 있다.
슈투트가르트, 만하임 등과 함께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속하는 칼스루헤(Karlsruhe)는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도시다. 인구 30만명의 중소 도시인데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관광지도 없어서다. 파리 동역에서 이체(ICE)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도시의 첫 인상은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이곳에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독일 연방재판소, 유명 공과대학 등이 자리하고 있다.

칼스루헤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도심에 위치한 왕궁이다. 미술관으로도 쓰이는 이곳에서는 다채로운 전시가 열리며 넓은 잔디밭에선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곳,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가 1989년 문을 연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예술과 미디어 센터)’이다. ‘ZKM’은 린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미디어 아트 센터로 불리는 곳으로 매해 22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내년이면 개관 30주년을 맞는 ZKM은 ‘제 2의 도약’을 꿈꾸며 또다른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유네스코 지정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으로 칼스루헤 시가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다.

10월초 방문한 ZKM은 우선 외관과 규모가 인상적이었다. 유럽 특유의 오래된 건물과 함께 전면이 유리로 이뤄진 현대식 건물, 그리고 센터 앞 대형 설치 작품까지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지상 5층, 길이 500m, 폭 100m 공간에는 대규모 전시실, 미디어 박물관, 음향연구소, 헤르츠 연구실, 랩, 극장,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평일 오후인데도 센터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1992년 문을 연 칼스루헤 국립 디자인·조형예술 대학이 인접해서다. 미디어 아트 계열 학생을 주로 뽑는 이 대학은 일부 건물이 ZKM과 연결돼 있어 도서관과 테크닉 시설 등을 공유하고 대형 전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교수진들도 양쪽을 오가며 작업과 수업을 진행, 자연스레 협업이 이뤄진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ZKM 공간은 1·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탄약과 화약 등을 제조하던 탄약공장이었고, 종전 후 1970년대는 제철소로 활용됐다. 이후 20년간 방치됐던 공간은 철거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칼스루헤시는 ‘보존’에 의미를 뒀고 1986년 시와 학계·시민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 이곳을 예술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ZKM으로 변신시켰다.

센터가 문을 열면서 미디어 아트, 음악, 건축 등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요소들이 한곳에 집중됐고, 개관 후 끊임없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채워넣으며 미디어 아트 전진기지로 입지를 굳혔다.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티아내 리델 디렉터는 “전쟁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물건들을 만들어내던 상업적 공간이 이제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지식의 공간으로 변모한 셈”이라고 말했다.

센터로 들어서면 천정까지 확 뚫린 로비가 눈에 띈다. 간단한 식사까지 가능한 카페와 제법 규모가 큰 아트상품 숍 등이 자리한 로비에서는 센터 후원 등을 돕는 파트너쉽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로비에 걸린 대형 전광판에서는 다양한 비디오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백남준 작가의 작품도 보인다.

1층 로비를 중심으로 양 쪽에 대형 전시실이 두 개 자리잡고 있다. ZKM의 전시 퀄리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0월 현재 ‘오픈 코드 Ⅱ’전과 ‘Art in Motion-100 Masterpieces with athrough Media’전 (2019년 10월까지)등 2개의 대형 전시와 함께 ‘마샬 멕루한과 아트’전 등이 열리고 있다. 이 가운데 ‘오픈 코드 Ⅱ’전은 내년 중 한국 전시도 기획중이며 ‘Art in Motion’전은 백남준, 존 케이지 등 20~21세기 화제가 됐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ZKM은 1년이면 대규모 전시 2~3회를 포함해 약 20여개 정도의 전시를 진행한다.

1만여점이 넘는 비디오 관련 자료와 서적 등을 소장하고 있는 미디어 도서관은 ZKM의 자랑으로 소장 자료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관 초창기부터 시각적인 기술과 아트 뿐 아니라 ‘음악’ 등 사운드 관련 연구·개발·작품 제작에 관심을 가져온 ZKM의 음향 연구소 역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과 지역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해 작곡, 녹음,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72개의 스피커가 장착된 공간은 마치 콘서트장에 있는 것처럼 웅장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ZKM의 미션 중 하나는 낡은 것의 복원이다. 비디오영상연구스튜디오에서는 1950년대 개발된 오디오, 낡은 TV, 수신기, 옛 비디오 작품 등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하며 복원된 것들은 전시 등을 통해 관람객들을 만난다.

ZKM의 또 다른 핵심시설인 헤르츠 랩은 미디어 아트, 과학, 사회 분야의 결합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예술작품 창제작과 미디어 테크놀로지 연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AR, VR, 인공 지능 등 현대예술과 결합된 다양한 과학 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랩 이름 ‘헤르츠’는 칼스루헤 출신으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주파수’(헤르츠) 개념을 만들어 낸 과학자 하인리히 헤르츠 이름에서 따왔다.

그밖에 지역민들이 찍은 얼굴 사진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작품이 전시된 ‘파노라마 랩’은 ZKM이 개발한 독보적인 첨단 기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연극, 무용 등 다채로운 공연을 진행하는 300석 규모의 극장도 갖추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글·사진=독일 칼스루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