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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문화를 품다 <7>부산시립시민도서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국내 첫 공공도서관
2018년 09월 10일(월) 00:00
고려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시를 모은 ‘포은 시고’(圃隱時藁).
시민도서관 2층에 자리한 역사관은 도서관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매월 셋째주 일요일 오전 9시30분 부산시립시민도서관(이하 시민도서관)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열린다. 부산시내 중학생 30여 명이 주축이 된 독서동아리 ‘미네르바’다. 로마신화속 지혜의 여신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난 1986년 발족됐으니 햇수로 벌써 30여 년이 넘었다. 학생들은 매달 한차례씩 모여 미리 지정한 도서를 읽은 후 책 내용을 놓고 열띤 토론을 펼친다. 평소 책 보다는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더 가까이 하는 일부 학생도 이날 만큼은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처음엔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모임에 들어왔지만 1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토론의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시민도서관 독서동아리의 장점은 회원들과 사서가 함께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독서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어린이, 청소년, 성인, 시니어를 대상으로 현재 ‘한마음’ ‘미네르바’ ‘솔기와’ ‘책갈피’ ‘푸른 소리’ ‘한울타리’ ‘시니어’ 등 7개를 운영하고 있다. 모임당 평균 30명의 회원과 사서 1명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논의를 거쳐 매월 한 권의 도서를 선정한 후 1명이 독후감 발제를 해오면 이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동아리에 참석한 사서는 도서를 선정할 때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내용을 일지로 작성해 공유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독서동아리가 장수하게 된 비결은 ‘참여는 하되 주도하지 않는’ 운영 노하우 덕분이다. 특히 지난 2011년 부터 사서들이 직접 조직한 독서회도 함께 진행하는 등 독서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부산 지역 40여 개의 공공도서관 가운데 대표 도서관으로 불리는 원동력이다.

시민도서관은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다. 1901년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조직한 ‘홍도회’라는 단체의 도서실이 전신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부산시립도서관으로 새로운 명패를 달게 되면서 공공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져왔다. 부산시 동광동에 있었던 도서관은 증축을 거치면서 1963년 부전동으로 터전을 옮긴 후 1982년 현재의 초읍동에 정착하기 까지 세번의 변곡점을 맞았다.

80년대 건립된 시민도서관은 광주시립도서관의 외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전체 면적이 3805평에 이른다. 지하 1층에는 각종 문화행사와 영화상영, 심포지엄이 열리는 시민소리숲이 들어서 있고 1층에는 유아·어린이실, 장애인 정보누리터, 아메리칸코너, 고문헌실이 자리하고 있다. 2층에는 인문사회과학실, 자연기술과학실, 대출실, 역사관이 꾸며져 있고 3층에는 디지털 자료실, 다문화자료실, 연속간행물이 들어서 있다. 시민도서관의 장서는 총류 5만1088권(8월말 기준), 철학 4만3224권, 종교 2만5179권, 사회과학 16만378권, 자연과학 3만3545권, 기술과학 8만2581권, 예술 4만1594권, 어학 2만5015권, 문학 23만4695권, 역사 6만784권 등 75만8073권이다.

원미경 시민도서관 열람실 계장은 “공공 도서관의 장서는 도서관의 정체성과 그 도시의 독서수준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라면서 “시민도서관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온·오프라인 독서 목록과 전문가, 사서들의 추천 등을 고려해 도서 컬렉션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도서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콘텐츠는 1층 복도 앞에 자리하고 있는 고문헌실이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1호이자 11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서관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광복 전 일본서적 1만 8천500여 책과 한·일 고서 6천600여 책 등 총 2만 5천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고서들의 책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서가에는 얼핏 봐도 수백 년이 넘은 오래된 책과 자료집들이 빽빽히 꽂혀 있다.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박물관의 전시실을 둘러 보는 느낌이다. 고문헌실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범상치 않은 고서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시를 모은 ‘포은 시고’(圃隱時藁)다. 세종 21년(1439년) 간행된 임진왜란 이전 판본으로, 문화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명돼 200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원 계장은 “이곳에 소장된 일부 고문헌은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일본에서도 열람하기 힘든 귀중본이 많아 일본 학자들이 많이 찾는다”며 “1969년부터 고문헌 자료를 해제해 사료 가치가 높은 중요자료를 대상으로 꾸준히 자료집을 발간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도서관의 공공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부산시민독서 생활화 운동인 ‘원북 원부산’이다. 올해로 15주년을 맞는 원북원부산운동은 한권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과 경험을 공유하는 독서캠페인이다. 부산시와 교육청이 공동 주최하고 24개 공공도서관이 주관하는 캠페인을 통해 그동안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2004년) ‘사람풍경’(김형경)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할머니의사 청진기를 놓다’(조병국)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유복렬) ‘비숲’(김산하) ‘여행하는 인간’(문요한) 등의 도서를 선정했다.

원북 원부산운동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건 도서선정과정이다. 한권의 책을 선정해 독서운동을 펼치는 게 목적이지만 시민도서관은 시민들의 합의를 얻기 위해 각계 전문가와 사서가 매주 직접 수백 여권의 신간을 꼼꼼히 검토하고 일주일 단위로 50권, 30권, 20권. 10권, 5권으로 리스트를 압축한다.

매년 3월 시민도서관은 후보도서 5권을 대상으로 시민 투표인단을 모집해 최종 원북도서로 선정하는데 매번 수만 여 명이 참가할 만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종도서로 선정된 후에는 원북 원부산 선정도서 선포식을 개최해 본격적인 독서운동에 들어간다. 이와함께 원북 독서릴레이, 독서토론동아리 운영, 작가와의 만남, 독후감 공모, 심포지엄, 연합독서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지역서점과의 상생도 시민도서관의 강점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에 맞춰 지역서점을 활성화 하기 위해 1년치 도서구입예산을 한번에 사용하지 않고 매월 한차례씩 희망도서 리스트를 만들어 작은 동네서점들도 응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지역 서점 34곳이 시민도서관에 도서를 납품하고 있다.

/부산=글·사진 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