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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문화를 품다 <4>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도서관] 인문학의 보금자리 … 지역 주민 문화충전의 최전선

미국 유학중 사고로 잃은 딸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지하 1층·지상 4층 도서관으로 탄생 인문학·미술·클래식 강좌 펼쳐
장서 15만권·회원 4만6천여명 이용 주민들 이야기 꽃피우는 소통의 공간
2018년 07월 23일(월) 00:00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부근에 자리한 이진아기념도서관 전경. 나무재질로 마감한 모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이진아기념도서관 제공>
서울 서대문안산자락에 위치한 독립공원 일대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일제 강점기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비롯해 안산봉수대, 봉원사 등 자연풍광과 어우러진 뜻깊은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근래 이 지역을 찾는 시민들 사이에 명소로 떠오른 곳이 있다. 지난 2005년 개관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이하 이진아도서관·관장 김보일)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서대문구 주민들의 문화사랑방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공공도서관이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형무소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이진아도서관은 나무재질로 마감된 4층 건물이다.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의 건물 외관과 톤이 비슷한 붉은 벽돌로 설계된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건물 외벽에 손글씨로 쓴 ‘이진아’라는 간판이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 명칭으로는 이례적인 여자 이름이다.

이진아는 지난 2003년 미국 유학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기업인 이상철씨의 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 딸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50억 원을 서울시에 기부했다. 조건은 단 하나, 도서관의 명칭에 딸의 이름이 들어갈 것이었다. 서울의 몇몇 구(區) 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서대문구가 현재의 부지를 제안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다. 공공도서관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인 이름을 사용하게 된 사연이다. 1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2005년 9월 15일, 진아씨의 생일에 맞춰 문을 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채광을 끌어 들인 ‘열린 컨셉’이 인상적이다. 지하1층, 지상4층 연면적 836평 규모의 도서관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내부 벽면과 바닥을 자작나무와 목재로 만들었다. 또한 아이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모자열람실, 어린이 놀이방, 어린이 열람실 등을 꾸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인근의 인왕산 전경을 끌어 들인 공간 배치로 200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주민들.






1층 현관벽에는 진아씨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이 설치돼 있다. ‘2003년 6월2일 미국에서 영원한 나라로 가다. 2005년 9월15일 책 좋아했던 딸을 그리며 아빠 엄마 언니가 건립 기증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런 특별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도서관은 운영 면에서도 여느 도서관과는 조금 다르다. 개관때부터 전문성을 지닌 외부 인사를 공모해 관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단순한 공부방이 아닌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추구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왜 도서관에 공부방이 없느냐”며 항의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인문학, 미술, 클래식 등의 다양한 강좌를 접하게 되면서 이런 불만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개관 초기부터 중점을 둔 인문학 프로그램은 이진아도서관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장서 구입도 인문학 중심이다. 매년 도서관이 구입하는 장서 8000~9000권 가운데 문학·사회·철학 부문 책이 70%를 차지할 정도다.

국내에 인문학 붐이 일기 전부터 도서관은 철학자 강신주, 고전문학평론가 고미숙씨등 내로라 하는 인문학 스타들을 강사로 초빙했다. 근래에는 ‘로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서평가 이현우씨를 초청해 ‘테마가 있는 퇴근길 인문학’, ‘로쟈와 함께 읽는 세계문학’ ‘로쟈와 함께 읽는 한국문학’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 인문학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충전소’로 자리매김했다. 개관 초기만 해도 어머니 독서회에 참여한 회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집안일이었다면 요즘에는 인문학, 철학, 문화 등을 테마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지역내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책 읽어주는 실버 스토리텔러’도 화제를 모았다. 실버 스토리텔러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표현기법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관내 어린이집, 유치원, 도서관, 노인복지기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대간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취지다.

도서관의 대표 프로그램인 ‘필사와 낭독의 발견 플러스’






또한 올해 ‘생애주기별 독서문화 활성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기획한 ‘필사와 낭독의 발견 플러스’(매주 화요일·강사 독서토론 전문가 김제희)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관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필사이론수업, 필사클리닉, 국내외 유명 작가의 명문장 쓰기 등 8회 강좌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개관 후 이진아도서관은 전국도서관운영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됐고 국무총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등을 받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도서관이 발표한 이용고객현황에 따르면 2017년 신규 회원으로 가입한 주민은 2236명으로 전체 회원 가입자수는 4만6092명이다. 이 가운데 성인 회원이 86%(19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생 5%, 청소년 4%, 유아 4% 순이었다. 이용객 현황으로는 총 25만4702명이 열람실, 자료실 등을 이용하였으며 가장 많이 이용한 달은 2만8226명으로 8월이고 가장 적게 이용한 달은 1만4825명인 12월이었다. 도서관 장서는 총 15만330권이며 문학 6만495권(40%), 사회과학 3만4574권(16%), 순수과학 1만1331권(8%), 예술 6997권(5%) 순이었다.

/서울=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