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4〉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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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4〉 연재를 마치며
삭막한 도시에 온기 퍼지도록 동네책방 살아나야
2018년 05월 21일(월) 00:00
최근 광주 도심에 문을 연 동네책방들을 문화전당, 광주폴리, 갤러리 등과 연계시킨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전국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경의선 책거리.
시집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점,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가정식 서점, 일주일에 한권의 책만 파는 서점, 물 위의 바지(barge)선 서점….

지난해 10월 중순 부터 연재한 ‘도시의 아이콘, 동네책방’에서 만난 색깔있는 서점들이다. 이 시리즈를 위해 지난 7개월 동안 광주, 서울, 부산, 괴산, 통영, 대전 등 국내는 물론 런던, 리버풀, 도쿄에 이르기까지 얼추 40여 곳의 책방을 취재했다. 동네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 서점들은 저마다 독특한 북큐레이션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책방의 콘텐츠 못지않게 수 십년간 책방을 꾸려온 책방지기들의 열정은 흥미로운 이야기 창고였다. 서점은 더 이상 책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이번 ‘도시의 아이콘…’을 기획하게 된 건 지난해 여름 순천여행길에서 들른 아담한 책방이 계기가 됐다.

“순천역 앞엔 작은 책방이 있다. 순천역에서 기차시간이 남았다면 어정쩡하게 플랫폼을 서성이지 말고 순천역 앞 작은 동네서점 ‘책방 심다’에 가보자.”(구선아의 ‘여행자의 동네서점’ 중)

그녀의 책에서 알게 된 ‘책방 심다’는 순천역 인근 재래시장 골목길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노랑색 페인트로 마감한 책방은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띌 만큼 산뜻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여성이 방문객을 맞았다. 15평 규모의 책방 가운데에는 7∼8명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좋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건 ‘Blind Date with a Book’ 서가였다. 주인장인 홍승용·김주은 부부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좋은 책들을 골라 포장한 뒤 그 위에 내용과 저자를 상상해보는, 일종의 깜짝 이벤트였다. 책 광고와 표지에 현혹돼 책을 선택하기 보다는 진짜 좋은 책을 고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책의 홍수 속에서 ‘보물 찾기’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광주로 돌아 온 후, 주변을 살펴보니 웬걸, 의외로 많은 동네책방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조선대, 푸른길, 남구 천변좌로, 광산구 수완동 등 온라인 서점으로 향토 서점들이 떠난 자리에 이들 개미 책방이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불과 2∼3년 사이에.

이는 비단 광주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3년 1625곳이던 서점은 2015년 1559곳으로 줄었지만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은 오히려 늘었다. 올해엔 서울 60여 곳을 포함해 전국에 150여 곳이 생겼다.

동네서점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온 데에는 책값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한 도서정가제가 있다. 당초 3년 시한부였던 이 제도는 동네서점이 ‘약진’하면서 오는 2020년까지 향후 3년간 더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책의 물성과 가치에 ‘눈을 뜬’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 전문서점인 ‘위트 앤 시니컬’(wit n synical)의 유희경 대표는 “온라인 서점에서는 내가 구입하고 싶은 책만 선택하기 때문에 책과 ‘깊게’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없지만 오프라인 책방은 다른 책들을 눈으로 보고, 책을 고른 후 펼쳐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네책방의 운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상당수의 책방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1∼2년 만에 문을 닫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고, 그나마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 점에서 런던과 일본의 동네서점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물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평소 책을 가까이 하는 그들의 문화는 수십 년간 동네서점들을 키워온 자양분이었다.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올 초 광주시가 우리 동네의 작은 책방들을 엮은 가이드 맵 ‘싸목싸목(천천히라는 전라도 방언)책방마실’을 발간한 것이다. 광주시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동네책방 투어를 진행하기 위해 펴낸 ‘싸목싸목’에는 숨, 인생가게, 라이트라이프, 메이드 인 아날로그, 공백, 소년의 서, 검은책방 흰책방, 타인의 책 지음책방, 심가네 박씨, 연지책방, 파종모종 등 지역의 12개 서점이 소개돼 있다.

또한 광주시 동구에서도 푸른길(옛 경전선 폐선부지) 공원을 책 거리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검토중이다.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푸른길 주변의 헌책방과 동네서점들을 코스로 엮어 색다른 복합 문화 공간을 꾸미기 위해서다. 문화전당이 들어서 있는 구도심 일대와 인근의 책방, 갤러리, 광주폴리 등 문화자산들을 꿰어 낸다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근래 관광명소로 떠오른 서울 마포구의 경의선 책거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동네 책방은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 실핏줄 같은 존재다. 이들 동네책방이 광주 문화명소로 뿌리 내리려면 지속적인 관심은 필수다. 이 시리즈가 책과 사람을 이어주고, 지역의 독서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끝〉

/박진현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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