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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부자로 사는 법
2018년 02월 07일(수) 00:00
미국의 부호 존 록펠러(1839∼1937)의 재산에는 생전 ‘더러운 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법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초창기 미국 석유 시장의 대부분을 독점하면서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불명예가 부담스러웠을까. 지난 1903년 록펠러는 ‘강도귀족’이란 오염을 씻기 위해 자선사업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록펠러의 재단 설립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변신’을 믿지 못한 미 연방의회가 깐깐하게 따지는 바람에 인가받는 데에만 3년이 걸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가 얼마나 선행을 하든지 간에 재산을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을 갚을 수는 없다”고 말한 일화는 록펠러 가문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록펠러가문의 자선사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존 록펠러의 부인 애비 록펠러였다. 평소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컬렉터인 메리 퀸, 릴리 블리스와 함께 1929년 맨해튼 한복판에 뉴욕현대미술관을 설립했다. 록펠러 여사가 내놓은 기금으로 미술관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마티스의 ‘춤’ 등 수많은 걸작을 구입해 미국인들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오일 머니’로 부를 일군 또 다른 기업인은 J. 폴 게티(1892∼1976)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유전과 미술품을 사들인 그는 미국인 최초로 10억 달러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196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구두쇠로 악명이 높았다. 수천 평의 대저택에서 살면서도 전화요금을 줄이기 위해 거실 한 쪽에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해놓고 자신의 손님들에게 동전을 교환해줄 정도였다.

최근 개봉된 영화 ‘올 더 머니’(All of the money in the world·리들리 스콧 감독)에는 돈에 집착해 혈육도 외면하는 그의 비정함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1973년 자신의 16살 손자를 유괴한 인질범들과의 협상과정에서 그는 며느리의 간곡한 호소에도 몸값 1700만 달러(약 186억 원)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러면서 “내가 인질범에게 돈을 보내면 다른 손자들도 위험하다. 부자가 되는 건 쉽지만 부자로 사는 건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손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1점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의 작품은 주저없이 구입했다. 그의 ‘나몰라라’ 전략에 협상액이 4분의 1(400만 달러)로 줄면서 손자는 풀려났지만 이 과정에서도 게티는 몸값에 대한 세금감면까지 따지는 등 악덕기업가의 민낯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에서 게티는 추악한 기업인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LA의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들어선 세계적인 미술관 복합단지,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 때문이다. 평생 상상을 초월하는 수전노로 유명했지만 수 십 년간 모은 방대한 수집품과 자선재단을 통해 미국인들의 문화적 허기를 채워주고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기업인들의 메세나야 말로 멋진 부자로 사는 게 아닐까.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