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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주를 위해
2017년 07월 19일(수) 00:00
윤 영 기 사회부장
홈즈 대법관은 미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판관 가운데 한 명이다. 1929년 ‘미합중국 대(對) 슈빔머 판결’에서 이런 소수 의견을 남겼다. “만약 다른 원리보다도 더욱 긴요하게 애착을 요하는 헌법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생각의 원리다.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의 자유 말이다.” 간결한 주문에는 타인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내 표현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신념이 깃들어 있다.

굳이 먼 나라 얘기를 언급한 것은 광주를 되돌아보자는 의미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회의실에서 ‘옛 전남 도청 보존을 위한 시민 공청회’가 열렸다. 문화부 간부와 몇몇 문화전당 관계자를 제외하면 참석자 대부분은 ‘옛 도청 복원을 위한 범시도민 대책위원회’(대책위) 회원과 5·18단체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 도청을 함부로 훼손했다”며 문화부와 문화전당 측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다른 생각이라 배척해서야



문화전당에 포함된 옛 전남 도청(민주평화교류원·민평)에 광주항쟁 관련 전시 콘텐츠를 구축하면서 건물 내·외부를 리모델링해 총탄 자국 등 5월 유적을 훼손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기훈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상임이사는 이들과 생각의 결이 달랐다. 그는 공청회에서 “대책위의 주장대로 옛 전남 도청 전체를 복원하면 민평의 국제교류협력센터 기능은 사라진다. 민평을 5·18기념관으로 하자는 것인지, 그 원형 복원의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복원에는 고려할 사안도 있기에 그 대안을 우회적으로 물은 것이다.

대책위의 답변을 기대했던 그는 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야유와 욕설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가 발언을 시작하면서 “옛 전남 도청과 관련해서 생각의 다름을 이야기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운을 뗐을 때도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5월과 문화전당에 대한 고민의 깊이로 미뤄 이 상임이사는 결코 그렇게 매도당할 사람은 아니다.

광주문화도시협의회·광주예총·광주민예총 등이 지난달 29일 개최할 예정이었던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과 문화전당 정상화 해법 토론회’도 곡절 끝에 당일 현장에서 취소됐다. 문화전당 건립을 도맡았던 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이 주제 발표자로 나서는 것을 막아선 일부 5월 관련자들 때문이었다.

민평 논란과 무관한 예술도 ‘5월의 벽’을 마주했다. 최근 옛 전남도청 건물에 평화를 주제로 한 대형 조각보를 걸려던 한 작가는 일부 5월 관련자의 반대로 포기하고 다른 곳을 물색하고 있다. ‘민평을 훼손한 문화전당의 지원을 받은 작가’라는 게 이유였다.



민평, 보다 활발한 논의를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일련의 상황을 곱씹는 이유는 광주가 ‘닫힌 사회’로 변하는 것 같아서다. 옛 전남 도청 복원이라는 ‘대의명분’에 공론을 제기하는 것까지 금기하는 분위기를 우려하는 노파심이다. 강요된 ‘한목소리’ 탓에 옛 전남 도청 복원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안타깝지만 광주의 현재 민도가 이 정도인 것일까.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지키고 보존해야 할 5월의 정신과 가치, 유적이 소중하다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광주 사람들이다. 다만, 문화전당의 성공적 운영과 광주의 미래가 맞물려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게 이들의 ‘다름’이다. 문화전당은 민평을 포함한 5개 원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전제로 구동 원리가 설계돼 있다. 결국 민평 원형 복원 문제는 문화전당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옛 전남 도청의 전면 원형 복원에는 일정 부분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얘기다.

광주시가 ‘옛 전남 도청 보존을 위한 시민 공청회’에서 공식적으로 “대책위가 발표한 옛 전남 도청의 ‘5월 모습으로 원형복원’에 동의한다”고 공식 선언했으면서도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 자료에는 ‘큰 틀’에서 동의한다는 말을 끼워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옛 도청 복원 문제는 간단치 않다. 민평 복원과 문화전당은 시민들의 다각적인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옛 전남 도청과 문화전당 민평에 대해서는 열린 토론의 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토론과 논쟁 없는 공간은 닫힌 사회다. 광주는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