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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포옹, 소통의 정치를 위하여
2017년 05월 24일(수) 00:00
송 기 동 문화2부장
# “…철없었을 때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아 있었을 텐데. 하지만 한 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이제, 당신보다 더 큰 아이가 되고 나서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제게 사랑이었음을,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의 모든 아버지들이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갈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주셨음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지난 18일 열린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장. 유가족 김소형(37) 씨가 ‘슬픈 생일’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를 추모하는 편지글을 낭독하다 울먹거렸다. 완도수협에서 근무하던 소형 씨의 아버지는 1980년 5월18일에 태어난 딸을 보기 위해 완도에서 광주로 올라왔다. 나흘 뒤인 22일 밤 광주시 서구 쌍촌동 친척집에서 아내와 갓 난 딸과 머물던 그는 계엄군이 함부로 쏜 M16 총탄에 맞아(하악골 맹관 총상) 29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 씨의 편지글을 듣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다음 이어진 장면은 예상 밖이었다. 낭독을 마치고 퇴장하는 김 씨를 따라잡은 문 대통령이 꼭 안아 주면서 위로하는 모습은 더욱 눈물샘을 자극했다.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이나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모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기념식 마지막 순서로 문 대통령을 비롯해 김종률 작곡자와 참석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9년 만에 다시 제창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래서 유가족을 위로하는 노래, 갈등을 해소하는 화합의 노래로 들렸다.



유가족 안아주는 대통령



격식 없는 모습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가 화제다. 기념식을 마치고 나오며 구급차에 먼저 길을 양보하고, 동구 대인동 5·18 유공자 식당에서 8000원짜리 ‘생비’(육회 비빔밥)로 점심을 한 모습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같은 날 유튜브에 올라온 문 대통령 동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찢어진 구두 신고 묵묵히 뛰어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5분28초짜리 동영상이다. 벌써 150만여 명이 조회한 이 영상에는 지난해 5월 망월동 묘역을 참배한 문 대통령 후보의 닳고 찢어진 구두가 나온다. 분향을 하며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 자연스레 구두 밑바닥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구두를 오래 신은 까닭에 밑바닥은 닳아 있고 심지어 오른쪽 구두 밑창은 갈라져 있다. 게다가 이 구두는 유명 상품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단체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에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네티즌들이 그가 유명 브랜드 양말을 신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양말은 남대문시장에서 2만 원에 8켤레, 게다가 한 켤레를 더 얹어 주는 ‘짝퉁 양말’이었다. 이러한 검소하고 서민적인 대통령의 가식 없는 면모는 이전 대통령과 너무 달라 보여 낯설기조차 하다. 남의 입에 오르는 구설수(口舌數)가 아니라 탈권위적이면서 소탈한 모습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어제는 여러 가지 일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4일 만인 이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첫 정식 재판을 받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너무 다른 운명이 오버랩됐다. 서울 구치소를 떠나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낱낱이 TV로 중계됐다. 박 전 대통령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시작했지만 국정 농단으로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자전거에 막걸리 병 싣고



문 대통령은 격식 없는, 소탈한 행보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 앞에는 경제 문제와 남북한 관계, 5·18 진상 규명 등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다. 앞으로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보여 줬던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눈물과 포옹의 정치를 계속해서 보여 주기를 바란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꿈꿀 때, 한 시인이 그린 이상적 대통령 모습은 이랬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가더란다.”(신동엽, ‘산문시 1’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