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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광주가 꿈꾸는 대통령은?
2017년 04월 05일(수) 00:00
박진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지난달 초 한 장의 사진이 SNS를 타고 전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퇴임 후 자연인으로 돌아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미셀과 함께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깜짝 등장한 모습이었다. 사진 속 오바마 전 대통령의 차림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물 빠진 청바지와 갈색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그의 왼쪽 손에는 큼지막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오바마 커플의 ‘미술관 사랑’은 지난해 8월 개봉된 ‘사우스사이드 위드 유’(Southside with you)에 달달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는 1989년 하버드 로스쿨 학생이었던 오바마가 시카고 대형 로펌의 인턴으로 일하면서 만난 변호사 미셀과의 첫 데이트 현장을 보여 준다. 로맨틱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처럼 두 사람은 오전부터 사우스사이드 지역을 돌아다니며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오바마와 미셀의 마음이 통한 장소는 ‘시카고 아트 오브 인스티튜트’. 이날 미셀은 오바마의 예술적 소양에 반했고, 마지막 데이트 코스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눈다.

골프광이나 농구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오바마는 독서와 예술을 즐긴 ‘문화 대통령’이었다. 역대 미 대통령 가운데 워싱턴에 있는 케네디공연예술센터의 대통령석(presidential box)을 자주 찾은 ‘VIP 손님’도 오바마 부부였다.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밤, 거실에 앉아 ‘케네디센터 아너스’(Kennedy Center Honors) 시상식을 TV로 지켜보던 미국 시청자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흐트러진’ 얼굴에 깜짝 놀랐다. 이날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75)의 1968년 히트곡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인간적인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것이다.

오바마의 휴가철 도서 목록도 미국인들의 화젯거리다. 매년 백악관이 공개하는 오바마가 보고 들은 책과 음악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바꿔 놓을 만큼 ‘핫’하다. 특히 흥미로운 건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휴가철 플레이리스트다. 2년 전 오바마가 직접 고른 ‘여름 낮’ ‘여름밤’이란 제목의 리스트에는 재즈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부터 비욘세,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같은 최신 팝스타들의 댄스곡까지 망라됐다. 대통령의 문화생활이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로 비쳐지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바마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린 리더였다면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문화를 ‘챙긴’ 지도자였다. 지난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했던 프랑스의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바닥’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테랑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돈과는 거리가 먼(?) ‘그랑 프로제’(Grand Projet)를 추켜들었다. 파리 시내에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 등 초대형 인프라를 건립해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자는 중장기 문화 사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오페라 극장의 문턱을 낮춘 바스티유 오페라하우스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당시 파리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팔레 가르니에 극장 입장료 1500프랑의 절반인 670프랑으로 서민들도 오페라를 관람하도록 한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지난 1989년 문을 연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는 이후 주머니가 가벼운 파리지앵의 발길이 이어졌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5월9일)이 불과 3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연일 저마다 장밋빛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건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이 온통 경제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TV 토론회나 정책 설명회에서 쏟아지는 ‘말의 성찬’ 가운데 문화 관련 공약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후보들의 문화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프로필도 빈약하다.

21세기는 문화가 곧 경쟁력이자 국력인 시대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경제 대통령도 좋지만, 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대통령은 또 어떠한가. MB와 박근혜 정부로부터 ‘홀대받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명예 회복을 갈망하는 광주가 더더욱 바라는 대통령 아닌가.

특히 우리는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사태를 통해 국가 지도자의 그릇된 가치관이 예술의 창작과 국민의 삶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바라건대, 이젠 ‘문화로 통하고 문화로 흥하는’ 멋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그러려면 누가 현실 가능한 정책이나 비전으로 문화를 살릴 적임자인지 가려내야 한다. 영혼 없는 ‘문화 융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문화 광주 아니 문화 강국의 미래를 위해서 당신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