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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文化로 물들다 ] ③ ‘소년의 서(書)’ 서점 연 연극인 임인자씨
“국가통제와 폭력 관심에 연극 올리고 서점 열어”
2017년 01월 11일(수) 00:00
광주극장 옆 골목에 문을 연 서점 ‘소년의 서(書)’ 주인장 임인자씨.
서점으로 들어서니 주인장은 책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은서 연출가가 보내 준 책들이었다. ‘월간미술’을 비롯해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 연극 개론 등 기저귀 박스에 가득 보내 준 책은 ‘연극’과 관련된 서적들이 많았다.

“연출님이 보내 준 책 중에 연극 관련 희귀본들이 많아요.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챙겨 보낸 것들이지요. 절판된 책들은 쉽게 구하기가 어려워요. 많은 분들이 책을 보내주셨는데 누군가의 개인 ‘서가(書架)’에서 나오지 않으면 구하기 힘든 책들입니다. 모두 감사하죠.”

그녀는 방금 전, 서울에서 온 손님이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헌책 한권을 사갔다며 신기해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 5가 광주극장 옆골목에 자리한 서점 ‘소년의 서(書)’는 연극 연출가이자, 독립기획자로 활동중인 임인자씨가 문을 열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간간히 책 판매를 하고 있지만 정식 오픈식은 하지 못했다. 서울을 오가는 시간이 많아서다. 지난 한 해 문화계를 뜨겁게 달군 검열 문제와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불거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문제 제기에 적극적 행보를 보여 온 그녀는 올해도 ‘검열 백서’ 제작에 참여중이다. 또 서울 광화문에 들어선 ‘광장극장 블랙텐트’에도 운영위원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소년의 서’는 인문사회과학예술 서적에 방점을 두고 있다. 녹색이 인상적인 서점 상징 마크는 옛 전남도청앞 분수대를 형상화해 그녀가 직접 디자인했다.판매하는 책은 헌책이 80%, 새 책이 20% 정도다. 헌책은 임씨가 보유하고 있던 것을 기반으로 계림동 헌책방 등을 돌아다니며 직접 구입한 책들로 희귀본들도 많다. 일부는 ‘서점에 꼭 어울리는 귀한 책’이라며 누군가가 가져다 주기도 했다.

연극, 다원예술 분야 등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터라 관련 책들이 많고 오월을 비롯해 광주의 역사 등 ‘광주’ 관련 책들도 많이 모으고 있는 중이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교육대에 다니다 다시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임씨는 2010년∼2016년까지 ‘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또 서울연극협회가 주는 젊은 연극인상도 받았다.

임씨는 지난 2014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광천동 시민아파트, 전일빌딩 등 광주의 오래된 공간들에 주목한 ‘도시횡단프로젝트’ 예술감독을 맡으며 광주로 돌아왔다. 지난해 열린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페르난도 가르시아 도리 작가와 협업해 광주시 북구 한새봉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도롱뇽의 비탄’을 제작하기도 했다.

서점에서 유독 눈에 띄는 책이 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관계자인 한종선씨 등이 집필한 ‘살아남은 아이’다. 형제 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건이다.

이 책은 그녀가 서점을 열게 된 이유가 됐다. 서점 한 켠 작은 갤러리에는 한종선씨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시절 ‘살아남은 아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초청했던 임씨는 국가 폭력과 통제 사회, 생명·생태에 관한 것들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푸코의 ‘감시와 처벌’ 등은 자주 들여다본 책이다. 또 하나 그녀가 관심을 갖는 건 ‘공간’과 ‘공동체’로 관련 북 리스트도 갖춰두었다. 그녀는 ‘제도에서 밀려나고 배제된 사람들’에 대해 발언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왔다. 그게 바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을 오픈한 이유도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을 넘어 그런 논의들이 진행되는 공간을 꿈꾸어서다.

임씨는 지난해 서울 대학로에서 검열 사태에 맞선 릴레이 연극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에서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다룬 모노 드라마 ‘시민 L’을 공연하기도 했다.

올해는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한 대학로 X포럼이 진행하는 ‘검열백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모두 ‘기록해둘’ 의무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임씨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터라 서점은 당분간 수∼금요일(오후 1시∼8시) 주 3일 문을 연다. 방문하기 전 전화로 개점 여부를 확인하면 좋다. 문의 010-3256-2625.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