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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간속을 걷다-39 에필로그] 추억 찾아갔다 … 역사를 만났다
1930년대 학적부 서석초·호남 의술 탯자리 기독병원
양장점·빵집·책방·광주극장·녹두서점 등 38곳 방문
과거·현재 어울린 ‘광주의 시간’ 속을 걸었다
2016년 12월 14일(수) 00:00
시작은 광주극장이었다. 2015년 80주년을 맞는 광주극장 관련 기사를 준비하던 중 떠난 부산 여행에서 195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한 삼진어묵을 방문했다. 역시 1950년 조성된 국제시장 옆 유명한 보수동 헌책방 거리도 찾았다. 두 곳 모두 시간이 머무는 듯, 또 흘러가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을 놓치지 않으면서, 요란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공간이도 하다.

돌아오는 길, 광주극장 이외에도 광주엔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가게와 오래된 공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자주 찾던 궁전제과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LP를 사곤 했던 그 많던 레코드 가게는 다 어디로 갔을까, 가장 오래된 중국집은 어디일까.

‘광주, 시간 속을 걷다’는 도심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시간의 보석함을 하나씩 열어본 기획이었다. 광주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추억의 공간, 현재까지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학교, 병원, 종교 기관 등 공적인 공간들은 오롯이 광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개별 가게 취재의 경우 그 가게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삶의 풍경들을 함께 기록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취재는 최소 30년이 넘는 공간,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을 원칙으로 했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대를 이어가고 있는 곳은 예외였다. 딱 한번 시리즈 원칙에 맞지 않게, 이미 사라져 버린 ‘공간’을 탐색했다. 19870∼80년대 민주화의 상징, 녹두서점이다.

당초 6개월 정도 연재를 생각했던 시리즈는 1년을 지나 2년동안 계속됐고 모두 38곳을 찾아가 자료를 찾고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취재를 하면서 오래된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 자료와 문건들을 지면에 실었던 건 의미있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인 120년 역사의 서석초등학교에서 만난 1930년 학적부, 호남 의술의 탯자리 기독병원의 110년 역사를 생생히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사진 자료, 1920년 문을 연 광주·전남 유아 교육의 상징 중앙유치원의 졸업사진 등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았다.

또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광주에 사는 이들이 누구나 추억 하나 간직하고 있을 궁전제과의 1978년 모습, 광주 양장을 대표하는 50년 역사의 양장점 도미패션의 패션쇼 모습,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활터인 관덕정에서 활을 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광주극장의 옛모습과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1960년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상영되는 극장 앞을 가득 채운 여고생 단체 관람객들의 모습, 장내 아나운서가 영화 상영 전에 읽곤 했던 안내문, 낡은 영화 포스터와 오래된 영사기기 등등.

광주극장과 함께 유일하게 두차례 연재했던 곳은 ‘녹두서점’이다. 올해 열린 광주비엔날레 화제작 중 하나는 도라 가르시아의 ‘녹두서점-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이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소문으로만 듣던 녹두서점이 38년만에 재현돼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고, 비엔날레 재단이 선정하는 ‘눈(NOON) 예술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녹두서점을 다룬 기사들이 거의 없던 터라 서점 주인이었던 김상윤·정현애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의 이야기를 취재한 건 의미있는 일이었고, 녹두서점 앞의 윤상원 열사 모습이 담긴 귀한 사진들도 실을 수 있었다.

오래된 추억을 자극한 공간들도 많았다. 40년 동안 운영돼 온 광주시 동구 세계우표사는 한 때 우표수집 좀 해봤던 사람들이 열심히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기념일이면 많은 이들이 차려 입고 기념 사진을 찍던 쌍광사진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60년 역사의 중국집 영발원 등도 눈에 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최근 광주에는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와 감성, 인테리어로 무장한 공간들이 등장하고 그 공간을 채워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광주의 삶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오래된 공간과 그 곳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공간과 그 곳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다면 광주라는 도시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도시가 될 터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