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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시민<5>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덕수궁 역사 버무리니 근대 미술 잘 보이네
2016년 06월 08일(수) 00:00
1910년 건립된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 문을 연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미술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도심속 미술관’이다.
덕수궁 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게 떠오를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은행잎이 늦가을 노랗게 물들어 가는 돌담길을 연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 자리한 덕수궁 돌담길은 계절과 상관없이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를 시샘하듯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거닐면 헤어진다는 속설도 있지만. 덕수궁이 자리한 서울 중구 정동 일대는 근대역사가 태동된 시발지이다. 1897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위해 건설된 덕수궁은 근대 격변기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나라와 백성이 모두 태평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붙여진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옛 명칭 대안문)을 비롯해 중화전,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석조전 등의 전각이 들어서 있다. 또한 근래 덕수궁 주변은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명소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인근에 서울 시립미술관, 구 러시아 공사관, 정동극장,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주한 외국 대사관 등이 밀집돼 거대한 문화벨트나 다릉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 1998년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20일, 덕수궁 정문 앞은 마침 수문장 교대식(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3시30분)이 열리고 있었다. 조선시대 궁궐의 문을 개폐( 開閉)하고 경비와 순찰 업무를 담당하던 수문장의 교대 의식을 재현하는 것으로 덕수궁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여학생들과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수문장 교대식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덕수궁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 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했다. 궁 밖의 시끌벅적한 세상과 달리 오래된 건축물과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궁 안 곳곳에 자리한 아담한 벤치에는 도시락을 꺼내 먹거나 책을 읽으며 한낮의 오후를 즐기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정문에서 5분 정도 안쪽으로 걷다 보니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이하 덕수궁 미술관)이라는 표식이 붙은 웅장한 건물이 나왔다. 덕수궁 안의 전통적인 건축물들과 달리 화강암 재질의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으로 지은 석조전이다. 덕수궁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석조건물인 석조전 서관에 개관한 이래 우리나라 근대기인 1900∼1960년대까지의 미술과 아시아, 세계의 근대미술을 아우르고 있다.

아쉽게도 이날 미술관 정문은 고 이중섭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이중섭, 백 년의 신화’(6월3일∼10월3일) 준비로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미술관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자 ‘근현대 미술사 아카데미’(5월20일∼7월22일·오후 2시)라고 적힌 안내문이 방문객을 맞았다. 덕수궁 미술관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10주 동안 진행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날 개강식을 겸한 첫 번째 강좌는 역사학자 전우용씨의 ‘덕수궁, 근대한국을 그리다’였다. 덕수궁이 건설되던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 근현대 미술과 근대 역사의 발자취를 조명해 보는 자리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60여 명의 중장년 수강생들은 강의를 맡은 전씨의 해박한 설명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전 씨는 “청일전쟁과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대한제국의 국제적 위상이 추락하자 당시 고종황제는 독립국이자 문명국의 증거를 과시하기 위해 근대문명의 표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게 바로 덕수궁의 전신인 경운궁 중화전 건립이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경운궁은 전통 궁궐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편전, 중전, 동궁 등이 없어 황궁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종 황제가 상상했던 궁궐의 표상은 옛 것을 근본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참조하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기본으로 옛 것을 참조하는 ‘신본구참’(新本舊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경운궁의 협소한 권역을 보완하기 위해 인근에 도로를 내 경희궁을 경운궁에 결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종의 의도를 눈치챈 일제에 의해 경희궁과 경운궁을 하나로 묶으려고 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강제양위된 고종은 경운궁을 순종에게 물려 주고 퇴위한 뒤 경희궁에 자신의 호인 ‘덕수’(德壽)를 붙이려고 했지만 일제가 도로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차질을 빚었다. 이후 일제는 순종의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변경하는 바람에 고종황제의 황도건설사업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게 됐다.

올해로 8기째를 맞는 근현대 미술사 아카데미는 ‘근대 한국의 출발점, 정동과 덕수궁’, ‘이왕가 (李王家) 컬렉션’, ‘새로운 매체환경과 근대미술’, ‘덕수궁관,미술전시를 열다’, ‘변화의 바람과 여성작가’, ‘고종시대의 기억, 그 미학적 회상’ 등이 7월 22일까지 이어진다.

근현대 미술사 아카데미는 덕수궁 미술관의 문화적 정체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올해 ‘덕수궁, 근대한국을 그리다’를 기획한 것도 미술관의 장소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덕수궁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미술관의 소장품과 전시회, 교육 프로그램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같은 미술관의 기획의도는 지난 2012년 첫선을 보인 아카데미의 발자취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봄·가을 학기로 나눠 진행되는 아카데미는 그동안 ‘한국 근현대 미술의 흐름’ (나혜석에서부터 이우환까지), ‘서양 근·현대 미술의 흐름’(폴 세잔에서 부터 앤디 워홀까지), ‘미술, 문화와 만나다’, ‘근대 아시아 미술과 만나다’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왔다.

이와 함께 ‘아트 & 런치’, ‘낭만 수요일’, ‘힐링 목요일’, ‘씽씽 토요일’, ‘학교연계교육’도 덕수궁 미술관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아트 & 런치’는 도심에 자리한 미술관의 입지적인 조건을 살린 낮시간대 직장인 대상 작품 감상 프로그램이고, ‘낭만 수요일‘(오전 10시30분)은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힐링 목요일’(오전 10시30분)은 가사일로 지친 주부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선사하며 ‘씽씽 토요일’과 ‘학교연계 교육’은 초등학생과 중·고등학교 단체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시와 연계시킨 감상교육이다.

국립 현대미술관 조민경(홍보 담당)씨는 “덕수궁 미술관은 고 백남준, 박수근 화백 등의 근현대 미술 소장품을 기반으로 시민들의 미적 안목을 높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특히 1년에 세 차례 열리는 기획전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통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글·사진=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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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