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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보다 예술을 사랑한 ‘나타샤’
⑨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기행
2015년 10월 15일(목) 00:00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걸음걸음마다 유물이고 박물관이다. 곳곳에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향기가 배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예술로 감싸인 ‘러시아의 문화수도’다. 걸음걸음마다 유물이고 박물관이다. 위대한 시인·작가·화가들은 바로크·고딕·비잔틴 양식의 역사적 건축물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몸을 불살랐다. 푸시킨, 도스토옙스키(‘죄와벌’의 배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차르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책에서만 보아왔던 르누아르,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진품들을 만날 수 있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짧은 삶=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을 향한 표트르 대제의 야망으로 건설된 도시다. 도시 건설 도중 수많은 민중과 기술자들이 희생됐다. 땅 설고 물 설은 네바강 삼각주의 습지와 밀림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스러졌다. 그래서 푸시킨은 그의 서사시 ‘청동기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읊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 기행은 넵스키 대로(Nevsky Avenue)에서 시작한다.

13세기 몽고군의 침략으로 붕괴된 러시아를 구원한 알렉산드르 넵스키를 기념해 만들어진 넵스키 대로는 모스크바역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이르는 4km의 짧은 도로다. 대로변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줄지어 있다.

카잔 성당 인근 좁은 골목에는 숨은 예술가들의 단골집이 있다. ‘문학카페’다. 유서 깊은 이 찻집에는 러시아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시인’ 푸시킨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푸시킨이 죽음의 결투를 앞두고 마지막 아침식사를 했던 장소다.

1837년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에게 구애를 하며 명예를 더럽히는 일행을 향해 결투를 신청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투에 져 죽음을 맞게 된다. 허망하게도 결투의 총성 아래 서른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고 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라’던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다면 죽음의 결투를 불러들인 노여움을 잠재울 수 있었을 텐데….

문학카페는 이후 200여년 동안 러시아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푸시킨이 실제 결투에 사용한 총이 전시돼 있고, 그의 서재와 책들이 그대로 보관돼 있는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엎드려 입 맞춘 센나야 광장,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한 반지하 이층집 생가도 그대로다.

넵스키 수도원 옆에는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묘지가 있어 많은 예술인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

책으로 만났던 예술가의 향취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다.

◇걸음걸음이 모두 작품=착취와 희생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는 찬란한 문화재와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도시 자체가 문화재라 할 정도로 유물과 유적이 많다. 바로크·고딕·비잔틴 양식의 문화재와 유적에 사람이 산다. 이 때문에 증·개축이 제한돼 겉은 고칠 수 없고 내부만 수리해 사용할 수 있다.

겨울궁전 뒤편의 궁전 광장, 표트르 대제의 기마동상(푸시킨이 ‘청동기사상’이라고 비하한 동상)이 있는 데카브리스트 광장, 카잔 성당을 끼고 있는 예술의 광장, 이삭 성당과 니콜라이 1세의 기마상이 있는 이삭 광장 등 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예술혼을 간직한 불멸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도시를 실핏줄처럼 연결한 네바강과 운하에는 365개가 넘는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하나하나에는 대가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상도 있다.

◇문화예술 자체가 삶=러시아인에게 문화예술은 삶이다. 겨울이면 발레·오페라 공연을 보고, 여름이면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음악 콩쿨과 연주회를 즐긴다. 학생들은 학생증만 있으면 무료 입장이다. 음대생은 음악회가 무료이고,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은 공연이 무료다. 빵 사먹을 돈은 없어도, 생활비를 쪼개서 문화생활을 즐긴다.

전쟁 중에도 음악회와 연주회는 계속됐다고 한다. 레닌그라드관 벽화가 이를 증명한다. 전쟁 중에 음악회를 하고, 문화 공연을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음악과 예술, 공연은 그들이 긴 전쟁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됐다.

문화수도 광주는 어떠할까?

/상트페테르부르크=박정욱기자 jw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