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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이반족 지켜준 100m 삶의 터전
8부 말레이시아편
② 이반족의 롱하우스
2015년 01월 05일(월) 00:00
말레이시아 소수민족의 전통 주거양식인 롱하우스는 한 지붕 아래 여섯 채에서 열 채 가량 집을 연결해 공동생활하는 게 특징이다.
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라왁 주는 전체 13개 말레이시아 주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열대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고, 소수민족 생활방식을 만날 수 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이곳을 대표하는 민족은 이반족이다. 과거 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면 적군의 머리를 베어 집 안에 걸어두는 독특한 풍습 때문에 가장 용맹스러운 소수민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반’은 ‘바다원주민’(Sea Dayak)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반족은 물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는 과거 생활양식을 잘 간직하고 용맹한 조상들의 고유한 문화 덕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소수민족이 됐다.

밀림 속에서 과거 생활방식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이반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먼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황톳빛 라장강(Rajang River) 줄기에 주로 거주하는 그들을 만나려면 시부에서 카핏으로 가는 배를 타고 126㎞를 세 시간 동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선박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좁다란 의자에 앉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세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선박 엔진과, 칭얼대는 아이 울음소리에 뒤범벅되어 창 밖으로 보이는 밀림에 감흥을 잃어갈 때쯤 도착을 알리는 경적이 울린다.

자그마한 항구에 닿자마자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거리를 가득 메운 중국어 간판이다. 이에 혼란스러워하는 방문객만큼이나 말레이시아 현지 가이드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보르네오섬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원주민 이반족과 중국 이주민이 많기 때문에 말레이어만으로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가이드 설명이 이어졌다. 이반족을 만나기 위한 고행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이 험해 일반 택시는 가기를 꺼려 한다는 카핏 이반족 마을을 주민 차를 빌려서 어렵게 향했다. 굽이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고개를 지나느라 자동차도 관광객도 녹초가 되어서야 이반족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밀림 강변에 ‘롱하우스’라고 불리는 기다란 집을 짓고 집단으로 생활한다.

어렵게 찾아간 이반족 마을은 왜 ‘롱하우스’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길이 100m, 폭 20m 면적에 집 여섯 채가 한 지붕을 얻고 나란히 붙어 있었다. 말레이 소수민족 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롱하우스는 전통 주거 양식으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 지상에서 약 1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기둥 삼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지은 롱하우스는 짙은 갈색 목재와 하늘색 양철판, 붉은빛이 선명한 벽돌 등 서로 다른 소재와 색으로 벽을 만들었지만 분명 지붕은 하나였다.

말레이시아 소수민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롱하우스로 명명한 이 집은 최근 밀림 속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롱하우스 홈스테이는 방문객들이 소수민족과 함께 밀림에서 생활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등 독특한 추억을 얻는 기회가 되고 있다.

롱하우스는 단순히 지붕만 연결된 형태가 아니다. 말레이 민족 전통 주택 어디에서 볼 수 있듯, 지상 1m 높이에 지어진 주택에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난다. 하나로 연결된 방이 마치 강당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의복을 생산하는 공장이자 어린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노는 놀이터로 활용된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한 가족당 13명 안팎 대가족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반족 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았던 조상들이 함께 생활하며 의복을 만들고 식량을 얻기 위해 공동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반족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집에는 없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머리를 실내에 걸어 두던 풍습.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호전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롱하우스라는 집단생활 시스템이 효과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반족 주민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등 관계기관이 소수민족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지속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수민족 고유한 생활방식을 복원한 컬쳐빌리지나 롱하우스 홈스테이를 체험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현대 문물을 접한 이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전통을 유지하려면 이에 걸맞은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실제 카핏에서 만난 이반족 롱하우스 집에 들어가면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들이 즐비했다. 문 앞에 놓인 커다란 성탄 트리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장식은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의 삶도 이미 고유한 모습을 잃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전통 의복을 생산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말레이시아 소수민족 전통 직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가정에서도 이미 값이 저렴한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한 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반족 비송(여·35)씨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로부터 전통 직물을 생산하는 방법이 내려오고 있지만 그 문양이 지닌 의미와 전체 과정을 아는 이는 드물다”며 “전통을 계승하려고 해도 개인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그녀의 가족을 살펴보면 남편과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인근 대도시로 나가 있으며 주말에만 가족을 보러 집에 온다고 했다. 시아버지 역시 용맹스런 이반족 전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낡은 밴을 운전하는 것이었다. 이반족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마을 전체 사람 중 일부 여성들로 그들 역시 의복을 생산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을 맞기 위해 보여주는 의식을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