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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염불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2014년 09월 19일(금) 00:00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맡은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서 잇속에만 마음을 둘 때 쓰는 표현이다. 여기서의 ‘잿밥’을 ‘젯밥’이라고 잘못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잿밥(齋-)은 불공을 드릴 때 부처 앞에 놓는 밥이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차려 놓는 젯밥(祭-)과는 다르다. 재(齋)는 성대한 불공이나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사람이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천도재(薦度齋)의 하나다. 잿밥을 굳이 젯밥으로 쓰고 싶다면 ‘제사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맘이 있다’라고 하면 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에도 스님들의 선거에 ‘돈 봉투’가 오가고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인 모양이다. 모두 잿밥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우리나라 최고의 선승으로 일컬어지는 송담(松潭) 스님이 최근 조계종을 탈퇴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한다.

송담 스님이 누구인가. ‘남 진제 북 송담’이라 해서 조계종 종정인 진제(眞際) 스님과 함께 최고의 존경을 받는 불교계 어른 아닌가. 그런 스님이 갑자기 조계종 탈퇴 선언을 한 것은 용주사 주지 선거 때문이다. 문중이 화합해 주지를 추대하라고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아 크게 낙담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중 벼슬’에 매달리는 추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88세 노선사가 평생 지켜온 종단을 떠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존재 의의도 찾기 힘든 야당



그러나 무엄하게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란 속담을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요즘 야당의 꼬락서니와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탈당 해프닝을 보면서다. 중이 싫다고 절이 떠날 수야 없겠지만 온통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의원들 사이에서 오죽했으면 절을 떠나겠다는 탈당 카드를 내밀었을까.

하지만 지금처럼 야당이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박 위원장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세월호법 관련 여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그동안의 강경 이미지를 내려놓기 위해 너무 서두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지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박 위원장의 고집과 소신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라 했다. 당시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찬성한 ‘외국인 투자촉진법’을 박 위원장이 끝까지 반대하더라는 것이었다. ‘재벌 도와주기 아니냐’는 명분에 집착하면서.

사실 일반인에게 비치는 박 위원장의 이미지는 그리 부드럽지 못하다. 아마도 그녀는 그런 걸 의식했던 모양이다. 세월호법을 유족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두 차례나 여당에 덜컥 합의해 준 것도 강경 투쟁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당내 강경파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당은 그녀에게 국민공감 혁신위원장이라는 명함을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국민 반감’뿐이었다.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도 실패로 끝났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정치쇄신특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니 애초부터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이를 묵인했던 문재인 의원의 어정쩡한 태도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 그룹의 좌장이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사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박 위원장은 나흘간 이어진 칩거를 끝내고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당을 분당(分黨) 위기로까지 내몰았던 탈당 카드를 접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이 주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며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들으려면 듣고 안 들으려면 말라는 식으로 야당을 압박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의 한 의원까지 나서서 “동냥은 주지 못할 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을까.



지겨운 계파 싸움 이제 그만



이런 상황이니 벌써부터 야당의 앞날이 험난해 보이는데 5선의 문희상 의원이 어제 위기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 구원투수로 재등판했다. 이날 열린 원로중진 연석회의에서 문 의원은 1년 4개월 만에 또 한 번 당을 재정비해야 하는 임시 당 대표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원장으로 모신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자조(自嘲)의 소리도 없지 않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친노무현계, 김한길계, 정세균계, 구민주계, 486계 등 5∼6개의 계파가 내년 초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 내부에서는 차제에 ‘갈라서자’며 분당설까지 나온 바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모습을 보일 바에는 차라리 쪼개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탤런트 이하늬의 외삼촌이며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문 위원장. 그는 과연 10%대의 지지율로 허덕이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날개 없는 추락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과연 잃어버린 야당으로서 존재 의의를 되찾게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야당이 무력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야당의 기능 정지는 곧바로 정치의 기능 정지요 대한민국의 기능이 마비됨을 의미한다. 그러니 살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깎는 혁신(革新)을 통해 당을 회생시켜야 할 무거운 짐이 그에게 주어진 셈이다.

중요한 것은 당의 회생 과정에서 이념이나 노선 혹은 계파 간 안배로 그저 봉합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여론과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당내 권력투쟁과 개인 정치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희망이 없다. 잿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최소한 염불하는 시늉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