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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왕의 남자’에서 ‘호남의 남자’로
26년 만에 이룬 '선거 혁명'
지역구도 타파와 지역발전
2014년 08월 08일(금) 00:00
엊그제 이정현 의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선 시켜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난 오히려 “당신이 당선돼 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맨 처음 그의 고향 출마를 적극 권유했고 이어 그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칼럼을 내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요즘 주위에서 ‘돗자리를 깔아도 좋겠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두 번의 칼럼이 얼마나 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칼럼을 쓴 당사자로서 고마운 것은 모두들 설마 하는 가운데 나의 예상대로 그가 당선돼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은 이정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사를 바꿀 획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당선이 고마웠다.

대이변이라고들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도 했다. 그만큼 그의 당선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막판 여론조사에서 앞선다는 소식에도 설마 했다. 고민을 하다가도 투표장에 들어서면 결국 2번을 찍는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기어이 당선되고야 말았다. 뒤늦게 사람들은 그의 승리 요인을 분석하느라 부산을 떤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진정성이 유권자들에게 통했다는 점이다.

그가 출마하면서 내놓은 말은 ‘지역구도 타파’였다. 누군가 지역구도라는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또 다른 사람이 뚫고 또 뚫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지역구도의 엄청난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떠올렸다.



26년 만에 이룬 ‘선거 혁명’



어리석은 노인(愚公)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을 옮겼다는 이야기다. 지게에 흙을 지고 바다에 갔다 버리고 돌아오는 데만 꼬박 1년. 이웃 사람들은 당연히 비웃었을 것이다. 머지않아 죽을 텐데 어찌 그리 무모한 짓을 하느냐고. 이에 노인이 말한다. “내가 죽으면 내 아들,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계속 할 것이오. 그동안 산은 깎여 나가겠지만 더 높아지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는 길이 날 것 아니겠소.”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시 고사(故事)의 결말을 보자. 노인의 무모한 시도로 산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산신이 상제(上帝:하느님)에게 달려가 호소한다. 이에 상제는 즉시 산을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단다.

이정현은 우공을 닮았다. 우직하게 도전하고 여러 차례 도전 끝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았다. 산을 구한 상제의 역할을 한 이는 당연히 위대한 순천·곡성 주민일 테고.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 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 무슨 일이든지 끈기로 계속 밀고 나가면 반드시 성공한다.

평생 수학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가난한 시골 출신, 공채 출신만 알아주던 집권당 당료사회에서 비공채, 그것도 호남 출신의 비주류. 그가 ‘야권의 텃밭’에 ‘여당의 깃발’을 꽂았다. 광주·전남에서 보수당 출신이 당선된 것은 26년 만에 처음이다. 가히 ‘선거 혁명’이라 하겠다. 그의 승리에는 ‘감성 선거 전략’도 한몫했다.

“딸 소정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 준비물 값 2000원!’ 하고 손을 내미는데 제 주머니에 그 2000원이 없어 ‘엄마한테 달래라’ 하고는 집을 나와 봉천동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 출근하면서 많이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2 어느 가을날 새벽 2시 자다가 인기척에 깨어보니 어머니는 달빛 아래 마당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낮에 타작하다 마당 흙 속에 박힌 콩을 줍고 계셨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너희 형제들 학비를 대제!’ 라는 말씀을 듣고 그날 저녁 베개가 다 젖도록 울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강연이나 연설 때 어머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목이 잠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뼛속까지 비주류입니다. 비주류의 심정을 잘 압니다. 비주류를 대변하겠습니다. 저, 일하고 싶습니다. 꼭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선거 기간 중에 그가 주민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암 투병 중인 아내가 선거를 돕는다는 소식도 입소문을 탔다.



지역구도 타파와 지역발전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다소 허황한 공약도 선거 전략으로서는 유효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현은 ‘예산 지킴이’로서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었다.

과거 공무원들이 예산확보를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다. 이 지역 출신 야당 국회의원들과는 달리 예결위원인 이정현만은 달랐다고 한다. 의원회관 한쪽 자리를 내주면서 해당 부처에 전화를 해 주었다. 직접 장관을 찾아가 자신의 일처럼 거들어 주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지금도 이를 잊지 못한다. 이는 ‘예산 폭탄’에 대한 믿음의 근거가 됐다.

아무튼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과 ‘획기적인 지역발전’이라는 실리에 주민들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광주 사람들마저 일부러 순천에 가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선거 초기의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동정표가 몰리는 현상)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대세에 따라가는 현상)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죽기 살기로 사지(死地)에 뛰어들었고 결국 살아 나왔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충무공 이순신이 남긴 그 유명한 말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이정현은 예전에도 늘 ‘정부·여당의 호남포기 전략 포기’를 역설하곤 했다. 이순신이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있을 수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무릇 장수란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임금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싸우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대한 이순신의 답이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렸던 이정현이 이제 ‘왕의 남자’에서 ‘호남의 남자’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