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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딸을 사랑한 男子 …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女子
[4부 캄보디아편] <5> 르떠싸잉과 껑으라이
악마의 엇나간 장난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운명
캄보디아 망부석 전설, 한국 박제상 설화와 유사
“한 이야기 변형돼 각국 전파 … 아시아 문화 한 뿌리”
2013년 05월 27일(월) 00:00
질그릇으로 유명한 캄보디아 캄퐁츠낭 입구에는 길을 떠나는 남자와 그를 애타게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자의 전설 ‘껑으라이와 르떠싸잉’ 동상이 서있다. /캄퐁츠낭=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껑으라이와 르떠싸잉의 이야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전설이다. 악마의 엇나간 사랑에서 싹튼 비극은 자식들에게 이어지고,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자는 망부석이 되면서 끝을 맺는다.

질그릇의 원료가 되는 황토의 빛깔이 아름다운 도시 캄퐁츠낭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약 90㎞가량 떨어져 있다. 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양 옆으로 드넓은 평원과 고무나무가 즐비하다. 황토로 된 비포장 도로를 3시간 정도 지나서 다다른 캄포츠낭 입구에는 동화책에나 등장할 법한 상징물이 서 있다.

캄보디아 대부분 도시 입구는 머리가 7개 달린 커다란 ‘나가상’(수호신)이 지키고 있지만 캄퐁츠낭에서는 이 동상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자를 붙잡기 위해 땅 바닥에 엎드려 애타게 손짓하는 여자와 목놓아 부르는 소리에도 오지말라며 길을 떠나는 남자. 혹여 백마 탄 왕자와 공주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동상의 주인공은 껑으라이와 르떠싸잉으로, 마을의 상징이 될 만큼 유명한 전설의 인물들이다.

옛날 이 마을에는 행복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시기한 악마는 부인을 잡아먹은 뒤, 부인의 모습으로 둔갑해 남편과 함께 생활한다. 악마는 남편과 ‘껑으라이’라는 어여쁜 딸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전 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10명의 딸은 눈엣가시였다. 결국 10명의 딸을 지하세계에 가두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눈을 빼내고, 다리를 잘라버린다.

이때 살아남은 막내가 언니들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하고, 왕국의 왕자와 결혼해 ‘르떠싸잉’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르떠싸잉이 우연히 마주친 악마의 딸인 껑으라이의 미모에 반해 버린 것이다. 르떠싸잉은 껑으라이가 악마인 줄도 모르고 부모에게 소개하고 결혼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껑으라이는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악마의 딸이라는 사실과 르떠싸잉 이모들의 눈을 어머니가 빼버린 것을 알게 되고 갈등 하게 된다. 껑으라이는 고민 끝에 르떠싸잉에게 말하고 만다. 이모들의 눈이 감춰진 지하세계가 험해 르떠싸잉이 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용감했던 르떠싸잉은 이모들에게 눈을 찾아주기 위해 지체 없이 지하세계로 떠날 채비를 한다. 껑으라이는 르떠싸잉을 붙잡지만 매몰차게 거부당한다. 르떠싸잉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이모들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자신이 속았다는 배신감에 떠날 것을 결심하고 길을 나선다. 하얀 백마를 타고.

껑으라이는 르떠싸잉을 너무 사랑했다. 그리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르떠싸잉은 돌아오지 않았다. 슬픔에 빠진 껑으라이는 결국 그 자리에서 산이 되었고, 그 산은 껑으라이 산으로 불리게 된다. 지금도 산에는 돌로 변한 껑으라이 망부석이 있다. 건기(11월∼다음해 5월)에는 차를 타고, 우기에는 배를 이용해 갈 수 있다. 더욱이 산을 보기 힘든 캄보디아에서는 이 산을 신성시 여긴다.

마을 주민 무엉 스론(43)씨는 “나는 껑으라이와 르떠싸잉의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었고, 할아버지는 또 당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며 “상당수의 마을 사람들이 껑으라이의 망부석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전설이나 민담이 그렇듯 이 이야기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여러 갈래로 형태가 바뀌었다. 특히 껑으라이와 르떠싸잉이 만나게 된 부분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스토리 중 하나가 신의 장난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르떠싸잉이 이모들의 눈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날 때 그의 어머니는 지하세계에 도착해서 보라며 편지 한통을 건넨다.

“껑으라이를 보거든 그녀를 죽이거라. 그는 우리의 원수이자 악마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신은 르떠싸잉이 잠시 잠든 틈에 내려와 “껑으라이와 결혼하거라”라고 편지 내용을 바꿔버린다. 인연이 없었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결국 비극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떻게 되든 이국땅에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망부석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프놈펜 남서쪽 해안 케프에서도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돌이 된 아내 석상’이 마을의 상징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곳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망부석 전설을 들을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망부석 설화 중에는 박제상이 일본에 있는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체포돼 죽자 그의 아내가 산자락에서 돌이 돼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아시아 100대 스토리 발굴 사업’에 참여했던 중앙대 방현석 교수는 “하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아시아 각국에 스며 있다”며 “자기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반영돼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기본적인 얼개는 같다”고 말했다.